[해외] 세키마치도서관

2019.06.26

마음이 통하는 지적 공간

세키마치도서관


세키마치도서관(関町図書館)을 가게 된 건 우연이었다. 반드시 가보라고 지인이 추천한 멋진 도서관을 찾아가려던 계획이었는데, 주소를 잘못 알아 도착해보니 전혀 다른 장소였다. 아뿔싸, 오후 다섯 시가 막 지났을 뿐인데도 12월 초순의 도쿄는 금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던 참에, 일행 중 한 명이 현재 서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도서관으로 가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주택가 한가운데 위치한 세키마치도서관을 가게 되었다.


도서관의 지적 자유에 관한 선언
세키마치도서관은 도쿄도 23구의 하나인 네리마구(練馬区)에 있다. 네리마구는 북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농경지가 많아서 도심이라기보다는 전원적 성격이 짙은 곳이다. 2018년 10월 기준으로 인구는 약 73만 5212명이다. 네리마구에는 히카리가오카도서관(光が丘図書館)과 세키마치도서관을 포함해 모두 13곳의 도서관이 있다. 세키마치도서관은 1982년 9월에 개관했는데 네리마구에서 중간쯤에 위치한다. 나무에 둘러싸여 조용한 분위기로 누구나 부담 없이 이용 가능한 ‘마음이 통하는 즐거운 도서관’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이 동네 도서관을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만난 건, 놀랍게도 일본도서관협회가 1954년에 채택하고 1979년 개정한 ‘도서관의 지적 자유에 관한 선언문’이다. 도서관이 기본적 인권의 하나인 알 자유를 갖는 국민에게 자료와 시설의 제공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삼으면서 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도서관은 다음의 네 가지 사실을 실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첫째, 도서관은 자료 수집의 자유를 갖는다. 둘째, 도서관은 자료 제공의 자유를 갖는다. 셋째, 도서관은 이용자의 비밀을 지킨다. 넷째, 도서관은 모든 검열에 반대한다. 그리고 위 도서관의 자유가 침해될 때 우리들은 단결해서 끝까지 자유를 지킨다. 이 비장하고 엄숙한 선언문을 다 읽어내자 나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자못 경건한 자세가 되었다.

이용자를 배려한 공간과 자료 배치
고개를 돌리니 독특한 화장실 사인이 눈길을 끈다. 누구나 사용 가능한 ‘다레데모 토이레(誰でも トイレ)’이다. 고령자, 휠체어 이용자, 임산부 등 남녀노소 모든 사람을 고려한 화장실이다.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을 도입한 화장실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눈에 띄는 곳에 있고 문은 가볍게 밀어도 쉽게 열리도록 되어있다.
이어지는 ‘이달의 전시’ 코너 주제가 흥미롭다. “첫눈에 반한 책”. 아무 생각 없이 한눈에 들어오는 인상적인 표지의 책들을 모았다며, 부디 손에 들고 읽어봐 달라면서 소중한 책과의 만남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사서의 말이 적혀있다. 표지만으로 선택된 책들인데, 소재가 꽃이라든가, 핑크색, 만화 주인공이나 일러스트 표지를 선호하는 일본인들의 취향이 느껴진다. 전시된 책은 물론 대출 가능하다.
자료실에서 눈여겨본 인상적인 부분은, 어린이실의 자료 분류법이다. 한국의 공공도서관 어린이실의 자료 분류는 대부분 성인 자료실의 분류법과 동일하다. KDC(Korean Decimal Classification)를 사용하는데, 이것이 아이들에게 유용한 분류인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회의적이다. 세키마치에서 제안하는 어린이 자료 분류법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시도로 보인다. 특히 동화책과 그림책의 분류는 단순하게 해 책을 찾는 어린이들에게 분류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한다. 그림책 분류를 살펴보면, EB는 일본 그림책, EG는 지식그림책, EO는 옛날이야기 그림책, EP와 ER은 모두 외국어 그림책으로, EP는 화가의 이름순으로 첫 글자가 가타카나순이고, ER은 화가 이름의 알파벳 순서로 정렬되어 있다.



작은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전문 레퍼런스 서비스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동네 도서관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 자료를 찾아주거나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레퍼런스 서비스도 제공한다. 도서관 데스크나 전화로 받으며, 홈페이지에서도 신청이 가능하다. 일상생활에서 알고 싶은 것이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문의할 수 있다. 이용자가 레퍼런스 신청 후 7일 이내에 전문사서가 이메일로 답변을 주도록 되어있다.
동네 도서관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소장 장서 수와 대출 가능한 도서 권수이다. 세키마치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장서 수는 약 13만 9406권으로 이전에는 1인당 10점까지만 대출 가능했는데 2019년부터 대출 한도가 늘어났다. 단행본, 잡지, 그림연극(紙芝居), CD, 카세트테이프를 포함해 15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책과 잡지는 13점까지이고, 영화DVD, 음악CD, 천그림책 등은 2점까지 대출할 수 있다.


지역 주민이 도서관을 후원하는 방법
네리마 구립도서관에서는 네리마구에 사무소나 점포를 가진 사업자들에게 사회 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잡지 후원 제도를 실시한다. 개인은 신청 불가다. 도서관의 잡지 목록에서 제공을 원하는 잡지를 선택할 수 있고 여러 잡지도 가능하다. 잡지 후원자가 되면 몇 가지 혜택이 주어지는데, 제공 잡지의 최신호 표지와 표지 뒷면, 그리고 잡지 서가에 후원자의 이름을 밝혀준다. 도서관 홈페이지에서는 후원자 사업의 게시물을 홍보해준다.
세키마치도서관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건, 지역의 주민들이 선사하는 어린이실의 아주 특별한 자료들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세상에 단 한 권씩밖에 없는 천그림책, 누노노에홍(布の絵本)이다. 한 페이지씩 넘기다 보면 그가 누군지 모르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이웃의 정성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덕분에 책을 읽어주는 사람에게도, 이야기를 듣는 아이에게도 책에 담긴 사랑이 그대로 전달될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동네 도서관에서 느끼는 온정에 몸과 마음이 녹녹해진다.




출처 : 행복한 아침독서 세계 도서관 산책1. 도곡정보문화도서관 관장 조금주

http://www.morningreading.org/article/2019/02/01/2019020109090016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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