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에 날려버리다

2013.10.24

한 방에 날려버리다

 

LG메트로작은쌈지도서관 관장 류창희

 

우리 LG메트르 작은쌈지도서관은 주민자치이기도 하지만, 교육청에서 지원을 받는 교육청 소속이기도 하고 문체부에서 지원금을 받았던 적이 있어 문체부 작은 도서관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공공 사립도서관이다. 작은 도움을 주는 여러 기관 덕분으로 어렵사리 꾸려가기도 하지만, 이곳저곳 눈치 보며 지원금을 타내고 정산서를 보고하는 어려움도 있다.

처음 설립을 교육청지원을 받아 여태까지 교육청시스템 DLS 방식을 도입해서 도서등록과 대출반납을 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학교도서관이 해킹을 당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져서 공공도서관 프로그램 KOlAS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전문 사서가 없고 여기저기 제재받는 곳도 많아, 일사불란하게 업무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 상근근무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한 사람에게만 교육을 해서 바꾸면 된다. 40여 명이 요일과 시간이 다 다르니 강제성을 띄기도 협조를 구하기도 쉽지가 않다. 자원봉사자는 자존심을 건드리면 당장 그만둔다. 때로는 한 분 한 분 알아모셔야 한다.

더구나 우리 도서관은 부산의 68개 작은 도서관 중 1만 6천여 권으로 장서 수가 가장 많다. 프로그램을 교체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장서점검을 하려면 우선 도서목록을 빼야 한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한 권 한 권 선별해야 한다. 내 손 하나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쥐었다 폈다 해야 하는데, 이건 손발의 손가락 발가락 길이가 다 다른 40여 명이다. 거기에 사공도 많아 배가 산으로도 가고 들로도 간다.

처음에는 등록번호순으로 000페이지부터 보는데 장난이 아니다. 도서관 지원팀 순회 사서팀장과 전담 사서가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점검하며 도와주는 데 6개월이 걸릴지 일 년이 걸릴지, 더구나 그분들을 우리 도서관만 오시라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1주일에 한 번 모시기도 여러 작은 도서관이 줄을 서 있으니 부산말로 꽝꽝 먼 작업이다.

우리 도서관 총무님,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라도 친지로 삼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아이오와 학적의 저력을 한시도 놓지 않는다. 애초 도서관지원팀의 계획과 방법이 있어서 이렇게 하라고 말하면 대답은 “예~”라고 하지만, 그녀는 또 새로운 아이디어의 다른 꿍꿍이가 있어 혼자 연구를 한다.

그녀는 3년여 봉사기간 동안 일주일에 4권 정도의 책을 읽었으나 총무역할 맡은 지 4개월 동안 책을 1권도 읽지 못했다고 엄살을 떤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방법의 궁리를 해보는 것이다. 몇 그 심정을 어찌 모르겠는가. 나도 처음에 관장을 맡은 몇 개월 동안 하루에도 새로운 도서관을 다시 닫았다가 짓느라고 만리장성을 쌓느라 저녁마다 수면제를 복용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일을 맡고, 나는 수면제는 면했으나 대신 세수도 못하고 잠이 든다. 그녀 덕분에 잠시 벽돌 모으기는 휴식 중이고 그녀는 깃발 들고 선발대 행군 중이다.

나는 어찌해야 할까? 걱정만 하는 데 비해, 그녀는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숫자와 통계와 기능에 대해 연구를 한다. 연구 중간에 행동(실천)해 보기를 좋아하니, 좌충우돌 일속에 파묻혀 있다. 그녀는 핸드백 대신 노트북을 둘러매고 교육청 교육정보원에 가서 라더기 (장서 점검기) 두 대를 빌려왔다. 일일이 수작업을 안 해도 바코드인식기계로 2만 권까지 입력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 좋은 세상’이 외치며 한껏 들떴다.

삑! 삑! 삑! 이 경쾌한 소리는 입력되는 소리다. “삐~익~~~” 이소리는 이미 등록되어 있는데 또 누른다고 앙탈을 부리는 소리다. 앙탈 소리가 들리면 한 권의 정보를 지워야 한다.

월요일 오전 팀에서 오후로, 오후 팀에서 화요일 오전 팀으로 ~ 금요일 오후 팀까지 마치고 토요일에는 또 새로운 팀이 투입되었다. 그녀는 라더기 사용방법의 교육을 위해 매일 나와서 봉사자 선생님들을 돕는다.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지원팀들을 퇴근시키고 또 혼자서 삑삑거리며 등록을 한다. 기계가 두 대뿐이니 인원이 아무리 많아도 두 사람만 일을 할 수 있다. 3천4천5천 척척 숫자가 진행되니 몇 개월 동안 40여 명이 수작업으로 해야 할 일을 며칠 동안 거뜬히 해내고 있다. 참으로 신통방통한 세상, 신의 경지다.

토요일 오후, 그녀는 또 한 명의 자원팀과 강행군을 한다. 토요일 봉사선생님은 남자분이다. 평일은 직장에 다니고 토요일만 시간을 내어 봉사하신다.

나는 한시 땡! 퇴근하라고 카카오톡을 보냈다. 그녀는 분발하면 발분망식(發憤忘食), 즉 밥 먹는 일도 잊어버리고 집중해서 일하는 스타일을 잘 아는지라 시간대마다 알람기능처럼 챙겨야 한다. 그리고 몰래 불시방문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관공서건물이라 1층부터 3층까지 다 잠겨 있다. 그런데 4층 도서관 문만 빼꼼하게 열려 있다. 똑똑 노크를 했으나, 이게 뭔가? 책과 책 사이 서가와 서가 사이, 묵은 책들의 연식처럼, 책의 무게처럼, 천장 바닥 서가 뭔가 분위기가 묵직하다. 남자선생님은 어린이실에서 그녀는 000 철학 코너에서 서로 등을 돌리고 일을 하는데 거리감이 심상치않다. 폭발 직전의 저기압 기류다. 뭔 일을 냈는가. 대형사고임이 틀림없다. 사 들고 간 아이스크림이 녹는다며 어서 와 앉으라고 해도 두 선생님이 모두 일손을 놓지 않는다. 이거 관장의 권위가 말이 아니다. 아무리 내 밥 먹고 급수도 없는 무급의 관장이라도 그렇지. 자기들이나 나나 어차피 지역을 위한 봉사인데 말이 말 같이 들리지 않나 하는 서운함이 아주 없지도 아니하다. 그래도 어찌 내색을 하겠는가. 오로지 방긋방긋 웃는 것이 나의 특기다. 우리는 도서관의 책보다 귀한 꽃 사서 봉사자들 아닌가. “와~? 와~ 와그라노?” 겨우, 두 사람을 끌어다 앉히니 레슬링 급의 몸매에서 푹푹 열기가 차오른다. 남자선생님은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도 안 한다. ‘어허, 이런 고얀 사람들을 봤나. 무슨 짓을 저질러 놓고 대치 상태인가. 오전 중에 끝낼 것이라 큰소리치더니…, 여태까지 일을 붙잡고 있으면서.’

‘한국인 놀이’라는 것이 있다. 접근금지, 관계자 외 출입금지…. 우리는 왜 ‘금지’라는 글자만 보면 호기심 천국의 사람들이 되는지…

남자선생님에게 도서스캐너사용법을 설명하면서 절대로 ‘디렉터리’를 누르면 안 된다고, 거듭거듭 강조를 했다고 한다. 절대, ‘절대’라는 단어는 오히려 호기심만 증폭시킨 셈이다. 5권 정도를 삑 삑 삑 명쾌하게 진도를 나가다가 그냥 살짝, 아주 살짝, 단 한 번 눌러봤을 뿐인데…, 그렇다. 아주 살짝 눌러봤을 뿐인데. 아뿔싸! 바로 앞에 보이던 3천, 몇 권까지 등록한 숫자가 한방에 날아가 버렸다. 월요일부터 운동장 계주달리기처럼 총류부터 십진법으로 분류된 서가를 돌며 바통터치 하던 기계를 먹통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베리심플, 소오심플’ 0이라는 숫자를 신기록으로 남겼다.

“바보 됐다.” 백지가 되었다. 바보천치가 되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하얗게 변하는 얼굴빛깔, 물론 나는 보지 못했다. 방금, 들었을 뿐인데…, 그 묵직했던 분위기가 나를 검은 베일로 뒤덮는다. 순간, 나는 얼었지만 아니 열이 쳐 올랐지만, 나까지 놀라 펄쩍 뛰면 그 황소처럼 커다란 남자선생님은 몸을 어디다 숨기겠는가. 몸 둘 곳이 없다. 평정심을 찾아야 한다. 차분한 마음으로 수신의 도를 터야 한다. 나는 엷은 미소를 머금으며 반가부상의 보살이 되었다. 전혀 내색하지 않는 돌부처의 경지가 되었다.

두 사람을 앞에 두고 운동선수를 하는 집의 작은놈이 중학교시절 요트장 안에 풍력계가 설치된 곳에 장난으로 몇 명이 올라가 바닷물을 양동이로 물을 퍼 날라 붙는 바람에 갑자기 부산지역에 폭풍우와 강수량이 넘쳐 기상청과 청와대상황실까지 놀라게 했던 비상사태의 에피소드만 목이 아프도록 설명했다. 나라를 놀라게 한 것도 아니니, 그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다시 해보자라며 그들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기며 위로를 했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실수를 했던 남자분을 달래어 보내드리고, 그녀와 나는 어둠이 내려앉는지도 모른 체 일을 했다. 간혹 삐~익~ 소리가 나면 손가락 끝이 오그라들었다. 포락지형(炮烙之刑)이 따로 없다.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이 아니고 도로아미타불이 겁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맨 마지막 한 권을 찍고 나서 둘이는 꽉 껴안았다. 서로 심장이 멎은 듯 달라붙는데, 처음 알았다. 눈물은 심장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관장님, 이제 오늘 저녁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에구~! 오늘은 내 눈도 그녀 눈도 어서 감고 싶다.

도서관 사서는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우리처럼 도서관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국가나 사회에서 월급을 받는 것도, 차비를 받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돈으로 밥 사먹으며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이다. 오직 책보기를 좋아하고 책을 아끼는 것을 좋아한다. 열정이 자존심이다. 우리가 그동안 지켰던 DLS의 시스템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KOLAS로 다시 힘차게 시작한다.

 

 

LG메트로 작은쌈지도서관 자원봉사자 30여명

   

  

   

밖에서 바라 본 광경

    

      

 

    도서관 내부 64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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