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운영사례
[서울] 바라카 작은 도서관
난민 돌보는 작은 도서관
바라카 작은 도서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어느 주택가에 2층짜리 벽돌 건물이 있다. 상아색 건물 위에 샛노란 간판이 걸려 있다. 그 간판에 푸르게 적혀 있다. ‘바라카 작은 도서관.’ 책가방을 멘 아이들이 조잘거리며 건물 계단을 오르내린다.
평범한 가정집을 닮은 작은 도서관 벽에는 학습 진도표가 붙어 있다. 삐뚤빼뚤 색칠한 그림도 그 옆에 걸려 있다. 책상과 선반에는 문제집들이 널브러져 있다. 아이들의 공간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흔한 공부방의 풍경이다.
익숙한 공간 가운데 낯선 것도 있다. 기자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그 눈의 쌍꺼풀이 짙다. 속눈썹은 검고 길며 머리카락은 부드럽게 곱슬거린다. 아이 옆에 앉은 엄마는 히잡으로 머리를 가렸다. 이들은 기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했다.
난민과 이주민들을 위한 작은 쉼터
바라카 작은 도서관은 2018년 7월 문을 열었다. 난민과 이주민 가정의 적응과 정착을 돕는 비영리 기관이다. 이태원 지역에 사는 난민·이주민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실, 방과 후 학습지도, 문화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도서관을 찾아오는 이들의 대다수는 아이와 그 엄마다. 가장인 남편이 어딘가로 일하러 나가면, 이들은 비좁고 허술한 집에 남겨진다. 바라카 작은 도서관은 그들이 마실나와 쉬고 이야기 나누고 공부하는 공간이다. 요즘 도서관을 드나드는 이는 50여 명 정도다. 아프간, 수단, 모로코, 이라크, 이집트, 미얀마 등에서 한국을 찾아왔다. 이들 가운데 11명은 한국 정부에 난민 지위를 신청해둔 상태다.
월세, 관리비, 아이들의 간식비 등은 모두 후원금에서 충당한다. 도서관의 운영 취지에 공감하는 일반인을 비롯해 기업과 교회가 도서관을 돕고 있다. 학용품이나 수업 교재 등을 직접 구매해 도서관으로 보내는 후원자도 있다. 후원금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형편이 어려운 아이 엄마들에게 분유나 기저귀 값 등을 지원한다. 아이들의 공부를 돕는 일은 자원봉사자들의 몫이다. 바라카 작은 도서관 홈페이지, 또는 용산구자원봉사센터 등을 보고 일을 돕겠다며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 도서관 근처에 위치한 한국폴리텍대학 학생들을 비롯한 대학생들도 적지 않다. 현재는 10여 명의 봉사자들이 일하고 있다.
축복이라는 이름의 도서관
도서관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김기학(56) 씨는 기독교인이다. 대학 졸업과 함께 기독교 비정부기구(NGO)에 들어갔다. 개발도상국에 교육과 원조를 제공하는 단체였다. 아내의 유학 공부를 따라 잠시 영국에 몇 년 머물렀지만,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같은 비정부기구에서 일했다. 그 일환으로 2004년부터 이집트를 자주 찾다가, 2008년 이집트에 정착했다. 외지고 작은 마을을 찾아 다니며 주민들에게 보건 위생을 가르쳤다. 김 대표의 아내도 같은 기구에서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 봉사를 하며 함께 일했다.
2011년 1월, 튀니지의 쟈스민 혁명으로 북아프리카 지역에 반독재 민주화 시위의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이집트에도 당도했다. 불안한 정국 때문에 김 대표 부부는 이집트에 더 머물 수 없었다. 고통 받는 이들을 돕는 길은 잠시 경로를 바꿨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들을 도왔다. 김 대표의 아내는 초등학교와 유치원에서 아랍권 출신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중언어 교사로 일했다. 김 대표는 지역사회개발자들을 모집하고 현지에 파견하는 단체에서 근무했다.
젊음을 봉사에 바치고 어느덧 중년에 접어든 부부는 더 지속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둥지를 만들고 싶었다. 특히 낯선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다문화 가정들이 눈에 밟혔다. 그들과 지역 사회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싶었다. 2017년 1월 그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 앞에 ‘이주민 가정 지원 센터’를 열었다. 외국 생활을 하며 배워둔 영어와 아랍어는 지원 업무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 아랍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난민·이주민들의 어려움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바라카 작은 도서관의 건립은 이주민 센터를 운영하면서 만난 어느 난민 가정으로부터 시작됐다. 2018년 6월, 561명의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입국했다. 그 가운데 서울로 올라온 한 가족을 김 대표가 만났다. 아이 둘과 함께 한국에 온 부부였다. 첫째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였지만, 한국 입국 6개월이 지나도록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뒤를 이어 여러 나라의 난민 아이들이 김 대표를 찾아왔다.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그의 임무가 됐다.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그 이름을 바라카라고 붙였다. 아랍어로 ‘축복’이라는 뜻이다. 김 대표는 이제 난민 아동뿐만 아니라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다문화 배경의 교육 소외계층 아동도 함께 가르친다.
김 대표는 매주 이주 여성 대여섯 명과 함께 아랍 음식을 나눠먹는 식사 모임을 도서관에서 연다. 벌써 3년째 이어져온 모임이다. “이주 여성들이 모여 지난 일주일의 긴장을 풀어내는 우물가, 빨래터 같은 자리”라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이 식사 모임이 우리 도서관의 정체성을 말해준다”고도 덧붙였다.
낯설고도 익숙한 곳, 이태원
도서관이 자리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은 낯선 한국 땅에 발을 디딘 이방인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곳이다. 다문화 지대인 이태원에는 외국인이 많이 산다. 가난한 난민 또는 이주민들이 동향인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도움을 청할 만한 커뮤니티를 찾기도 수월하다. 외국 음식점과 여행사, 종교 시설 등 이주민을 위한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특히 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은 지역 내 무슬림 난민·이주민들을 연결시켜주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이태원에는 난민과 이주민의 경제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거처가 있다. 집값이 하늘을 찌르는 서울이지만, 대로변 번화가에서 떨어진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낙후된 주택들이 있다. 서울에서 저렴하게 월세를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난민·이주민들은 구직 활동을 하는 동안 임시로 이곳에 머물기도 한다. 일종의 중간 정착지인 셈이다. 김 대표는 “이태원에 머물며 가장인 아버지가 일자리를 구하다 다른 도시에 있는 공장에 취직하면 온 가족이 해당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의 외로운 섬, 난민
지난 4년간 바라카 작은 도서관을 거쳐간 난민·이주민은 약 60여 명이다. 각자의 이유로 본국을 떠났지만 더 나은 삶을 찾아 한국행을 결심한 이들이다. 도서관에 찾아온 한 미얀마 가족은 로힝야 족이다. 미얀마 군의 로힝야 족 학살을 피해 말레이시아 난민촌에 머물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재정착 난민 제도’를 통해 한국에 왔다. 또 다른 튀니지 부부는 부족 간 분쟁에 휘말려 모국을 떠나야 했다. 그밖에도 종교적 박해나 내전, 경제적 어려움 등의 이유로 본국을 떠나온 이들이 각자의 사연을 품은 채 도서관을 찾아온다.
한국은 1992년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했다. 2012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독자적인 난민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민 인정률은 난민법의 존재가 무색할 만큼 낮은 수준이다. 2010~2020년 11년간 국내 평균 난민 인정률은 1.3%에 불과했다. 이는 G20 국가 중 최하위권(18번위)이다.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난민법 시행 첫해인 2013년부터 꾸준히 감소세를 보여 2020년에는 0.4%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0년 6684건의 난민 신청자 중 단 52명 만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같은 기간 유럽연합의 평균 난민 인정률인 32%, OECD 국가 평균인 24.8%에 비해 현저히 낮다.
난민들에게 난민 지위의 인정은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다. 일자리를 구하고, 최소한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갈음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난민 신청자는 난민법에 따라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그 지원액은 1인 가구 기준 월 40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난민 신청자는 생계비 지원 제도의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뒤늦게 알게 되어 신청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2020년에는 국내 난민 신청자 6684명의 4%인 265명만 생계비를 지원받았다. 그 돈을 받는다 해도, 생계비 지원 기간은 평균 3개월에 그친다. 그런데 취업은 난민 신청 6개월이 지나야 가능하다. 난민을 돌보는 제도를 들여다보면, 국내에 들어온 난민 신청자들이 굶어 죽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난민 신청자들은 사회문화적으로도 철저히 소외된 채 살아가고 있다. 고국 출신들과 함께 크고 작은 커뮤니티를 형성한 다른 이주민들과 달리, 난민 또는 난민 신청자들은 서로 의지할 만한 공동체를 꾸리기가 마땅치 않다. 또 경제활동을 하더라도 본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생계유지의 어려움도 가중된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서로를 보살피고 네트워크를 구축할 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는 난민 신청자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어렵게 여기게 되고, 그 결과 사회적으로 더 고립된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그 사정을 알고 있기에 김 대표는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난민을 위한 보호체계나 지원책이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바라카 작은 도서관은 고립과 불행을 덜어주는 오아시스와 같다.
학습 지원 절실한 난민 아동
이 도서관에 드나드는 20여 명의 아이들 가운데 6명은 난민 아동이다. 난민법 제43조에 따르면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난민 아동도 자국민과 같은 수준의 초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입학과 동시에 낯선 언어로 수업을 따라가야 하는 난민 아동에게 학업은 도전의 연속이다. “난민 아동들은 한국어가 서툰 상태에서 입학하니까 학교 적응에 어려움이 있다. 상급 학년이 되면서 한국어에는 점차 익숙해지지만 그동안 따라잡지 못한 수학, 사회, 영어 등 교과 공부에서 상당히 뒤쳐지게 된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게다가 한국 교육이 생소하고 재정적 여유가 없는 난민 부모들은 적극적으로 자녀를 지원해 줄 수 없다.
여기서부터 악순환의 고리가 다시 시작된다. 부족한 학습력을 보강하지 못하고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점차 학습을 포기하게 된다. 대학을 갈 수 있는 기회도,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놓치게 된다. 그렇게 성인이 되면, 한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한국 사회와 문화로부터 소외받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아이들이 ‘외로운 늑대’로 살아가지 않게 하려면 난민 아동을 위한 특별 교육 같은 구제책이 필요하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지난 2년 여 동안 코로나19는 난민 아동의 취약한 실태를 여실히 드러냈다. 학교가 문을 닫으며 시작된 원격수업은 이들에게 또 다른 벽이었다. 대부분의 난민 아이들은 원격수업에 필요한 접속 기기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한국어가 미숙한 부모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아이들을 받아준 곳은 바라카 작은 도서관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나와 원격 수업을 돕고 방역 수칙을 지키는 선에서 학습 지도 활동도 이어나갔다.
구제를 넘어 상생으로
바라카 작은 도서관은 난민·이주민 아이들이 한국 사회를 직접 경험할 기회도 마련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도서관 아이들이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세계시민포럼 그림대회>에서 입상해 국회의원 회관에 출품작을 전시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난민 아이들이 자존감과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도 바꿔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부딪힐 난관이 줄어들 것”이라고 김 대표는 말했다.
김 대표는 경제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주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소셜벤처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한지 1년쯤 지났을 무렵, 한 모로코 이주민이 김 대표를 찾아왔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도서관 청소나 허드렛일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대표는 이 일을 계기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주 여성들을 돕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이태원 라볶이’가 탄생했다. 이태원 라볶이는 이주 여성들이 만든 떡볶이 밀키트를 비대면으로 판매하는 소셜벤처다. 현재 4명의 이주 여성이 일하고 있으며 떡볶이 판매 수익은 전액 이주 여성을 위한 후원금으로 쓰인다.
김 대표는 또 난민·이주민들을 위한 작은 쉼터도 운영 중이다. 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 가까이 자리한 ‘다문화 다락방’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난민·이주민들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다락방 벽 한 면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들이 걸려있다. 김 대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속에 살며 그림을 그렸던 고흐처럼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바라카 작은 도서관은 야간 학습 교실을 시작했다. 학습이 부진한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금요일 저녁에는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며 피자를 나눠 먹기도 한다. 집에서 문화생활을 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좋아하는 시간이다. 김 대표는 난민·이주민들을 돕기 위한 다양한 지원책도 궁리하고 있다. “이태원·한남동 일대의 재개발로 인해 몇 년 후면 이곳을 떠나야 할 난민·이주민들을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때까지 김 대표는 오직 후원금과 자원봉사의 힘을 빌어 작은 도서관을 지켜야 한다.
/단비뉴스, 김은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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