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기찻길 작은도서관

2013.10.01

규모는 작아도 제 역할 다하는 ‘작은 도서관’

단순한 지식창고 넘어 삶의 질 변화시켜…정서적 교류 늘며 마을에도 활기



[전북 완주] 과거에는 도서관이 정보와 지식을 채우는 독서실 개념이었다면 최근에는 지역 문화를 반영한 쉼터·학습문화동아리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전북 권역의 작은 도서관 70여 곳 가운데 ‘최우수 작은 도서관’으로 선정된 전북 완주의 ‘기찻길 작은 도서관’이 그런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농촌 지역의 작은 도서관인 이곳은 단순한 지식창고로서의 기능을 넘어 동네 주민들의 다양한 재능기부를 통해 ‘만능 문화 놀이터’로 자리잡았다. 지난 6월 18일, 완주군 상관면 주민들의 보물창고로 불리는 기찻길 작은 도서관을 찾아가봤다. 

전주 도심에서 30분가량 달려 도착한 기찻길 작은 도서관은 농촌 마을의 작은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해 있었다. 주변에는 뻥 뚫린 고속도로와 울창한 숲이 우거져 문화시설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다. 이런 지리적 특성 때문일까. 기찻길 작은 도서관이 지난 2009년 문을 열기 전까지 상관면 주민들에게 책을 빌려본다는 건 매우 어렵고 귀찮은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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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작은 도서관을 찾은 주부들이 대화를 나누며 교류를 하고 있다.


기찻길 작은 도서관 운영을 맡고 있는 김경은 씨는 “전주시를 에워싸고 있는 완주군의 지리적 특성상 상관면 주민들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려면 버스를 두 번 환승해 1시간 반 이상을 가야했다.”며 “그마저도 버스 시간을 잘 맞춰 타지 못할 때는 하루를 꼬박 소비해야 책 한 권을 빌릴 수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작은 도서관은 공공 도서관에 비해 규모와 장서수는 적지만 접근성과 편의성을 기반으로 지역 특성에 맞춘 수요자 중심의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두고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꾸준한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기찻길 작은 도서관은 아파트 내에서만 생활하던 주부들과 어르신들을 밖으로 불러내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작은 도서관이 생기고 난 뒤로는 대도시가 전혀 부럽지 않아요. 아이들과 남편이 출근하고나면 여기에 와서 살다시피 해요.(웃음) 책도 읽고 배우고 싶었던 공예들도 무료로 배울 수 있거든요. 여기만 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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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 상관면에 위치한 ‘기찻길 작은 도서관’의 입구. 동네 주민들에게는 ‘만능 문화 놀이터’ 같은 곳이다.


도서관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침 동네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퀼트 공예를 하며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이곳에는 장서 1만 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주로 어린이 도서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하루 평균 도서관 이용객 수는 70명 정도로 대출건수는 약 200여 권에 달한다. 

작은 도서관이 생기면서 주민들 사이의 교류도 부쩍 잦아졌다. 처음 이사온 사람들도 도서관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주민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된다. 관계도 맺게 됐다. 도서관에서 만난 주부들 30명이 모여 독서회도 만들었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과 주부들이 한 달에 2회씩 도서관에서 만나 정기모임을 갖고 독서토론을 벌인다.

최근에는 완주군이 실시한 공모 사업에 선정돼 ‘역사 북아트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주민들이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하고, 지역의 유물들을 공부하며 손수 그림까지 그려넣는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전설이 깃든, 익산 미륵사지’, ‘숨은 보물찾기, 전주 경기전’, ‘생생쏙쏙 미륵사지 여행’ 등 제목만 들어도 흥미가 느껴지는, 단 하나뿐인 역사 그림책들은 다른 도서관에 기부할 정도로 수준 또한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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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강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한 지역 주민이 재능기부를 통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사진=기찻길 작은 도서관)


무엇보다 기찻길 작은 도서관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은 주민 참여 주도로 이뤄진 ‘재능기부 프로그램’이다. 주부 독서회가 활성화되면서 배움에서 소외돼야 했던 주민들의 욕구가 하나둘 분출하기 시작했다. 독서회 회원 가운데에는 영어강사와 퀼트, 각종 공예 자격증을 갖춘 전문가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재능기부로 이어지고 있다. 

분야도 다양하다. 생활 소품 만들기에 관심이 많은 주부들을 위한 퀼트와 테디베어를 비롯해 냅킨 공예·역사 북아트, 초등학생을 위한 영어와 논술 수업도 진행 중이다. 오늘은 우리 엄마가 영어선생님이 되고, 다음 날은 옆집 아줌마가 역사 선생님이 되는 식이다. 이를 통해 주민 간의 문화적·정서적 교감 또한 높아졌다. 

작은 도서관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는 주민 박효은(47) 씨는 “아이들 책 빌려주러 왔다가 우연히 독서회에 가입해 이웃들과도 친구가 됐다.”며 “함께 책을 읽고 바느질을 하면서 혼자서 고민하던 육아 문제나 교육 문제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아이들도 도서관 출입이 잦아진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책 읽는 것에 흥미를 갖게 됐다.”며 뿌듯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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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작은 도서관의 주부 독서회에서는 가족단위 역사탐방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사진=기찻길 작은 도서관)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하던 김선경(46) 씨는 주부 독서회에 참여하면서 관심 분야도 넓어졌다. 테디베어 전문 강사로 활동하는 그는 이곳에서 재능기부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김 씨는 “제가 가진 재능을 기부함으로서 이웃들과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독서회를 통해 혼자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없었던 다양한 감정과 시선들을 마주할 수 있다. 관심 없던 역사나 철학 분야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작은 도서관은 지역의 분위기도 바꿔놓고 있다. 문화 공간이라고는 학교 놀이터가 전부였던 청소년들도 학교를 마치고 나면 작은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을 보거나 문화 생활을 즐긴다. 공간이 만들어낸 유쾌한 변화다. 양광용(15)군은 “작지만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어서 좋다.”며 “책을 읽다가 숙제를 하기도 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동네 아주머니한테도 물어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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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들에게 작은 도서관은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 공간이다. 어르신들에게는 쉼터로, 아이들에게는 문화 놀이터 역할을 한다.


지역 주민들에게 작은 도서관은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 공간이기도 하다. 하루에 한 번씩 산책하듯 작은 도서관을 찾는다는 김상규(75)씨는 “고전을 읽고 싶어도 눈과 귀가 어두워 쉽지 않은데,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의 추천으로 만화로 된 고전을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며 “이곳만 오면 편안하다. 주민들이 먼저 반갑게 인사도 해주고 음료수까지 대접해주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필자도 이곳에서 3시간 정도 머물며 도서관 이용자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짐을 맡길 데가 없어서 들르는 주민부터 놀이터에서 놀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들어오는 아이들까지 작은 도서관은 상관면 주민들에게 단순한 도서관을 넘어 삶의 일부 같은 공간이었다. 그야말로 지역 주민들의 ‘만능 문화 놀이터’처럼 느껴진 작은 도서관이 그 작은 몸체와는 달리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정책기자 박이슬(직장인) loinya@naver.com


이 기사는 '정책브리핑 다정다감'의 정책기자단에 의해 작성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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