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북큐레이션, 주제가 있는 책읽기] 북큐레이션, 함께하는 아이디어의 힘

북큐레이션, 주제가 있는 책읽기

북큐레이션, 함께하는 아이디어의 힘


임민주 마포중앙도서관 사서


북큐레이션은 도서관 사서들의 업무 중 가장 기본적인 일이면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일 중의 하나이다. 사서의 업무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도서관을 꾸미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 업무이다. 간혹 그렇게 생각하는 사서들도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북큐레이션은 본질적으로 도서관의 존재적 이유와 가장 상통하고 근접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북큐레이션은 더욱 활성화되었고 장르의 벽이 무너졌으며 사서들은 더욱 많은 것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도서관과 자료실의 성격에 따라 매년 정기 큐레이션 계획서가 수립된다. 그렇지만 늘 계획대로 한 해가 끝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것이 큐레이션의 매력이고 큐레이션에 대한 사서들의 애정인 듯하다. 책을 판매하는 것도 아니고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매번 열심히 큐레이션에 매달린다. 얼핏 마케터와 유사해보일 수 있지만 도서관의 큐레이션이란 자료 회전율, 이용률 확대 외에도 다양한 목적을 가진다. 예를 들면 메타버스와 비트코인을 주제로 하는 큐레이션은 용어의 개념적 원리와 사회적 추이, 발전 가능성 등의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함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인간관계의 갈등이나 선택적 죽음과 같은 도덕적 문제들처럼 정답이 없는 이슈에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고 타인의 입장을 바꿔 생각해볼 수 있는 사회적 문제 해결 기능을 그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큐레이션은 ‘주제’라는 타이틀 아래 ‘왜’ ‘무엇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라는 맥락 있는 구성이 필연적으로 곁들여지게 된다. 그런 이유로 전시의 본질 자체를 관람객과 공유하기를 원하는 미술관의 팸플릿처럼 정보지를 만든다.

이렇게 북큐레이션이란 정보 전달, 자료 이용, 인식 개선 등의 다양한 목적을 풀어내기까지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생각들이 사서와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재구성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보 큐레이션 - 장르 통합, 공간 구성과 소품 활용


큐레이션 업무는 손이 많이 가고 바쁘지만 특별히 표가 나지 않는다. 특별한 예산도 없다. 그럼에도 도서관의 존재 이유만큼이나 중요하다. 상시 업무가 늘 그렇듯이 ‘사업비’라는 명목은 ‘재료비’가 되었고, 사서들은 부족한 손재주에도 이미지를 만들어 자르고 붙이는 업무가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공공도서관 5~7년차 사서는 곰손이 금손이 되는 기적적인 재능을 얻기도 한다. 마포중앙도서관 자료실에는 조금 특별한 것들이 있다. LP, 영화DVD, 음악CD와 같은 멀티미디어들이 개가제로 운영된다. 북큐레이션 역시 단순히 ‘책’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때로는 영화DVD나 클래식LP가 일반자료실의 북큐레이션에 전시되고 필요하다면 웹의 정보가, 때로는 다른 기관에서 제작한 팸플릿이 함께 어우러지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두 가지 큐레이션을 소개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큐레이션은 시각적 카피라이터가 돋보이는 ‘자연, 만나다’이다. 공공도서관 사서 대부분은 상시 진행되는 큐레이션 타이틀 한 개를 정할 때도 의견이 분분해지며 한바탕 소란이 일곤 한다.

작년 초, 연간 계획을 세울 당시에는 방학을 맞은 청소년들을 위해 ‘학습적 자연’의 시점에 머물러 주제를 정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생활 반경이 좁아지기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자연’이란 동경, 설렘, 공존해야 하는 아름다운 이웃으로 강조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환경오염으로 파생된 자연재해에 대해 체감하고 고민하게 되었고, 변이 바이러스와 새로운 질병들이 생태계 파괴에서 기인했을 수 있다는 점도 깨달았다. 사서들은 가벼운 회의 끝에 자연이 주는 정서적 풍요와 개체에 대한 호기심을 심어줄 만한 재미난 정보를 함께 전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기로 했다. 멈춰 선 일상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탐미하기에 최고의 적기처럼 느껴졌다. 대중을 위한 눈높이의 책이면서 자연 탐구에 대한 동기부여 창출이 이 큐레이션의 목적이 되었다.


북큐레이션은 용어 그대로 책을 선별하고 구성하여 전시하는 일이다. 정보지에는 함축적 의미를 담은 문학적 문구와 시 한 편을 담고, 카테고리를 동물·식물·곤충으로 구분하고 문학 속에 어우러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색다른 문학 카테고리를 곁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서정적인 스토리 속에 녹아든 자연과 풍경의 아름다움이 듬뿍 담긴 문학작품들을 선별해 소개했다. 마지막 카테고리에는 ‘경험’을 실천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고, 장소별 특징과 더 궁금한 것이 생길 경우 문의할 수 있는 연락처를 함께 제공하기로 했다.

그렇게 정보지 구성과 제작이 끝나면 꾸미기, 즉 연출에 대해 고민한다. 곤충, 동식물이란 주제는 관련 도서에 대한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수 있는 분야이다. 그래서 곤충이나 동식물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관찰 가능한 소재들을 다루는 대중적인 양서들을 선정했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문구를 작은 쇼케이스에 담아 카테고리를 구분해 전시했다. 거부감을 줄이고 친근함을 느낄 수 있도록 모든 책에 사서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작성한 메모를 부착했다. 마지막으로 전시 서가의 뒤편에는 잘 어울리는 이미지를 배경으로 세우고 어울리는 소품들을 활용했다. 이렇게 완성된 큐레이션은 어린이,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용자들이 의견을 나누며 큐레이션 서가 앞에 머무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고 그 모습은 사서들에게 보람과 행복, 기쁨으로 돌아왔다.


코로나 시대의 여행 큐레이션


두 번째 소개할 큐레이션은 ‘22 여행공식’이다. 여행이라는 주제는 쉬운 주제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여행이란 지극히도 개인적인 일이며 취향이나 성향에 따라 목적, 출발과 끝, 그 여정까지 모두 달라질 수 있었고 랜선 여행은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였다. 심지어 잃어버린 일상에 대한 체감지수 또한 모두가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길어진 방구석 문화가 활동적인 여행에 길들여졌던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고문이 되었을지 생각이 깊어졌다.

단순히 여행의 제한된 이동성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책과 정보를 다룰 것인가? 사서들은 여행이 주는 개개인의 감성과 기록의 관점에서 책과 어우러지는 더 많은 정보와 자료들이 큐레이션에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각자의 성향에 따라 느끼는 여러 소재들을 찾아 정리해보고, ‘코로나 시대의 여행자’로 부제를 정했다. 회의 결과는 조금 색달랐다. 정보지에는 여행의 종류를 ‘추억 여행’ ‘방구석 비대면 여행’ ‘실제로 떠나는 여행’ 세 가지로 나눴다.

<‘22 여행공식’ 큐레이션>

지난 여행을 추억하며 다시 한번 가슴 뛰는 감성과 느낌을 끌어낼 수 있는 여러 방법을 검토하고 수집해 정리했다. 누군가는 지난 시간을 정리하며 더 풍부한 감성으로 시공간을 뛰어넘어 더 좋은 감성여행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했다. 그리고 우울해질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해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블로그와 SNS, 사진첩 등을 활용한 여행 정리의 방법을 기록하고 휴대폰의 사진들을 정리하거나 기록으로 보존할 수 있는 활용성 높은 앱을 찾아 QR코드를 연계했다.

방구석 여행에는 온택트, 랜선을 활용한 대리 체험도 있지만, 책을 통해 방에서 떠나는 문학적 여행을 준비하기로 했다. ‘여행’에 있어 여행책만이 여행의 동기나 매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영화 「로마의 휴일」을 보고 이탈리아가 주는 아름다움에 빠지거나, 프랑스 요리책에서 프랑스 거리의 풍경과 음식 냄새를 상상하기도 한다. 그런 연유로 큐레이션에는 여행책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매개가 될 수 있는 모든 분야의 장르가 함께 어울릴 수 있었고, 그중에서 문화적인 감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료를 선별하고자 노력했다. 온택트로 떠날 수 있는 방구석 여행에는 마포구 책 축제 시기에 맞춰 여행작가의 온라인 북토크 강좌를 연계하고 관련 도서를 함께 소개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실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차박과 캠핑 문화, 코로나식 무착륙 여행, 입국제한 조치 국가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정보원을 찾아 사이트를 제공하고 여행 가능한 위드 코로나 해외여행 정보를 다뤘다. 그 밖에도 국내여행에 참고할 수 있는 전국 관광지에 안내 책자를 요청하여 다양한 국내여행 정보지를 함께 제공하고 여행의 흥취를 느낄 수 있는 세계의 랜드마크 모형, 지구본, 여행 엽서와 사진 등을 함께 전시했다.


함께하는 업무가 매력적인 사서들의 큐레이션


도서관 큐레이션이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니 혼자해선 안 된다. 큐레이션의 성격상 사회적 의제가 주제로 적용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에 함께 작업할 때 그 가치와 다양성이 빛을 발하는 본질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다수의 사서들이 각자의 경험과 지식, 아이디어들을 공유하며 준비할 때 편향되지 않는 방향으로 목표를 설정할 수 있고 양서 또한 객관적으로 선별해낼 수 있다.

<영상큐레이션>

마포중앙도서관은 영상큐레이션 제작에도 힘쓰고 있다. 구독 수를 늘리고자 흥미를 끌기 위해 오락 프로그램처럼 게임을 넣어 만들기도 했다. 영상큐레이션이라는 콘텐츠 제공은 많은 사서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업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의 입장에서 제공된 서비스의 수요자가 없다는 것은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섬뜩한 결론과도 맞닿아있다. 대중이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불편해한다면 수단을 다시 검토해서 가능한 수단으로 제공하려는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온라인 서비스에서 불가피한 노출이 불편하다면, 이제는 가상캐릭터와 음성지원까지 가능한 시대가 도래했다. 또한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영상큐레이션의 제작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굳이 얼굴을 마주하는 영상 작업에 뛰어든 이유는 찾아주는 사람과 조금 더 친밀한 공동체가 되고 싶은 오프라인적인 감성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온라인서점에 유능한 MD가 있다면 공공도서관에는 친근한 리딩 디렉터인 사서가 있다. 그래서 도서관을 한 번 더 찾게 되는 힘, 그것이 당당히 디지털 시대가 필요로 하는 도서관과 사서의 또 다른 역할이 아닐지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


/행복한아침독서

http://www.morningreading.org/article/2022/07/01/2022070109003314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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