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책으로 나누는 독서 대화] 봄날의 책 편지

책으로 나누는 독서 대화

봄날의 책 편지


매일 아침 그림책이나 이야기 한 편을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그날은 학교 창문 너머 매화나무가 주황색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한 때였다. 봄이 왔음을 알리는 것 같아 그림책 『가을에게, 봄에게』(미디어창비)를 펼쳤다. 책 속에서 봄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가을이 문득 궁금해져서 봄은 알고 가을은 모르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편지를 보내기로 한다. 그림책에는 봄과 가을이 주고받는 편지가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어있다. 책장을 덮고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편지를 써본 적이 있나요? 편지 봉투에 주소를 쓰고 우표를 붙여서 보내는 편지 말이에요. 선생님은 어렸을 때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고 언제나 답장이 올까 하루 종일 집 앞 우체통 앞에서 기다린 적이 있어요.”


스물 네 명 중 두 명 정도가 손을 들었다. ‘편지’는 기다림과 여유를 바탕으로 하는 대화이기에 바쁜 일상에서는 점점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물음으로써 서로의 거리를 조금씩 가깝게 하는 힘이 있어 나는 교실의 여러 활동에 초대한다. 바로 써서 건네주는 편지도 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품이 들고 시간이 걸리는 편지를 쓰기로 했다. 아이들이 편지를 보내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고, 주소를 알아 오는 동안 나는 우표와 편지지, 편지 봉투를 준비했다. 우표는 우체국에서 문학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그림책 네 권을 기념하기 위해 그림책의 주요 장면을 담아 만든 그림책 우표를 준비했다. 우리 반 아이들 주려고 아껴두었던 것을 꺼냈더니 “와, 예쁘다” 하고 감탄하며 우표를 고른다. 우표를 처음 본다며 신기해하고 우표에 나온 그림책 표지를 보고 아는 책이라며 반기면서 도서관으로 당장 빌리러 가는 아이도 있다. 다음은 편지 쓸 준비를 마치고 하얀 편지 봉투에 미리 적어 온 주소를 쓸 차례였다. 여기저기서 질문을 했다.


“선생님, 주소를 어디에 써요?”

“우표는 풀로 붙이나요?”

“편지에 어떤 내용을 쓰나요?”


아이의 질문이 물꼬가 되어 자연스럽게 책 편지 이야기로 이어졌다. 3월 한 달 동안 교실에서 우리가 읽었던 책들을 생각하며 나는 이미 읽어서 재미있지만 아직 이 책을 모르는, 꼭 소개하고 싶은 사람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엄마, 친구, 이모, 할머니, 언니, 선생님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말했다. 그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편지에 담아 써보면 어떨까 제안했고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말을 쓰면 좋을지 4학년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채운 내용은 칠판에 써두었다.


<봄날의 책 편지 쓰기>

받는 사람

첫인사

내 소개

편지를 쓰는 이유

나의 책 소개 (이 책을 읽게 된 계기, 제목, 글쓴이, 줄거리, 등장인물이나 주인공, 느낀 점, 궁금한 점, 좋은 구절, 표지 그리기 등)

마지막 인사

하고 싶은 말

보낸 날짜

보내는 사람


편지에 쓸 내용이 정해지니 사각사각 글씨 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종이에 얼굴을 묻은 채 좋아하는 책을 곁에 두고 편지를 쓰는 모습이 참 곱다. 편지를 받는 사람도, 편지에 담긴 이야기도 다양하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가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바뀌면 좋겠다고 바라는가 하면 부모님께 2편까지 읽었다고 다음 시리즈를 사 달라고 조르는 아이도 있다. 강아지가 주인공인 책을 읽다가 시골에서 할머니가 키우시는 개가 생각나서 연필을 들었다고 말하며 개는 답장을 못할 테니 할머니가 꼭 답장을 써달라고 신신당부하는 문장을 볼 때는 웃음이 나왔다.


“수아야, 편지를 쓰고 나니 마음이 어때?”

“언니가 답장을 해줄지 궁금해요.”

“편지를 받는 사람이 좋아할지 어떨지 기대돼요.”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편지를 쓰는 자신보다 ‘받는 사람’에게 향해 가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자연스레 같이 먹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고, 재밌는 책을 읽고 나면 얼른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책 편지를 쓰는 것은 결국 내 편지를 읽는 사람과 내가 읽었던 책을 이어주는 일이다. 아이들과 책 편지를 쓰는 일을 멈추지 못한 것은 서로를 연결하는 ‘책과 편지’의 이런 매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해마다 아이들과 진행하는 책 편지 쓰기는 책과 친해질 수 있는 작은 대화다.


두 시간의 편지 쓰는 시간이 흐르고 내게 다 쓴 편지를 전해주며 한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다른 책도 열심히 읽어서 편지로 추천해주고 싶어요.” 따뜻한 마음이 봄날의 햇살 같다. 나는 아이들의 편지 봉투를 다시 매만진다. 한 번 더 주소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스물 네 통의 편지를 품는다. 우체국으로 가는 길, 편지 위로 벚꽃잎이 후드득 떨어진다. 마침 떠나는 편지를 배웅하러 나왔나 보다.


/행복한아침독서

http://www.morningreading.org/article/2023/05/01/2023050109005114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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