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작은도서관 책고집

2020.01.31

사람 향기 나는 작은도서관

작은도서관 고집


2018년 12월 수원 화성행궁 성곽 안쪽 골목에 작은 도서관 '책고집'이 자리를 틀었다. 들어서는 순간 벽면 책장을 가득 채운 3천500여 권의 책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은은한 커피 향과 띄엄띄엄 놓인 나무 책상은 카페처럼 아늑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 소박하지만 알찬 도서관에는 매일 책을 사랑하는 독서가들이 드나든다. 시민들에게 개방된 공간인 만큼 책을 읽으러 들르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독서모임도 갖는다. 때로는 좋아하는 작가의 강연을 들으러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기도 한다.
최준영 작가는 사람 냄새, 책 냄새로 향기로운 이 공간을 '둥지'라고 불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책고집의 역사는 지난해 12월부터가 아니라, 수년 전 최준영 작가의 인문학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온라인 독서동아리에서 출발했다.



"시민들과 함께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고 나면 수강생들이 많이 아쉬워했어요.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책을 추천하고, 함께 읽을 수 있는 독서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직접 만나기는 어려우니 온라인으로 함책(함께 읽는 책)을 선정해 올리고, 회원들끼리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렇게 하나둘씩 전국 각지에 지역별로, 단체별로 독서동아리들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이름도 제각각 다른 독서동아리들이 총 29곳, 회원 수만 1천500명에 달했다. 최 작가가 저서 '최준영의 책고집'을 출간하면서 이 독서동아리는 '책고집'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였다.
이 온라인 독서동아리 책고집이 오프라인에 나와 둥지를 튼 곳이 바로 작은 도서관 책고집이다. 최 작가는 둥지가 생기고 나서 책고집 회원들의 활동이 더 활발해졌다고 귀띔했다. 함께 독서모임을 진행한 이들은 물론이고, 소문을 듣거나 주변 사람에게 이끌려 찾아온 사람들까지 더해져 온·오프라인 모두 북적거린다.



독서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사회에서 책고집들은 다소 '마이너리티'로 보일지도 모른다. 언제든 검색을 통해 방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사회에서 굳이 시간과 품을 들여 책을 읽는 이유가 뭘까? 최 작가는 "독서는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유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쉽게 얻은 지식은 머릿속에서 금방 휘발되지만 힘들여 얻은 지식은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됩니다. 독서는 오랜 시간 집중해 읽어야만 하는 행위에요. 책 속을 넘나들며 상상하고 질문을 던지죠. 독서는 그렇게 우리를 사유하게 하고, 삶의 깊이를 얻을 수 있게 합니다."
최 작가는 많이 읽기보다도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책의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변증법적 독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월터 카우프만이 언급한 변증법적 독서는 이른바 소크라테스적 태도가 중요한 독서다. 끊임없이 묻고, 대화하고, 질문하는 독서의 방식이다.
책 한 권을 그냥 읽기도 힘든 이들에게 변증법적 독서는 다소 어려울 수 있다. 그럴 때 책고집 같은 독서 모임은 큰 도움이 된다. 함께 책을 읽으면서 혹시라도 자신이 놓친 부분을 발견하기도 하고, 책의 내용을 서로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면서 시야를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작가는 "그냥 눈으로 읽고 지나가면 잊어버리기 쉽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면 기억에 남기 마련"이라며 "독서모임에 참여하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되고, 책의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최 작가의 별명은 '거리의 인문학자', '거지 교수'다. 지난 2005년 성프란시스대학에서 노숙인들을 상대로 인문학을 가르치고 함께 책을 읽으면서 생긴 수식어다. 최 작가 본인도 집이 가난해 야학으로 학교에 다녔던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 만큼, 이제껏 미혼모, 저소득층, 교도소 재소자 등 소외계층을 위한 인문학 강좌에 두루 참여해 왔다.
지금까지 최 작가가 걸어온 길을 아는 이들은 기꺼이 책고집을 찾는다. 덕분에 '책고집'에서는 매달 다채로운 양질의 강좌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엄기호 사회학자, 은유 작가, 이원석 작가, 신형철 교수, 한기호 평론가 등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책고집에 다녀갔다.
많은 시민단체와 지역 도서관에서 무료로 인문학 강좌를 열어도 자리가 빌 때가 많지만, 책고집에서 열리는 강좌는 2만 원의 회비를 내고 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특히 신형철 교수가 강의를 한 날은 수많은 인파가 몰려 책상을 밀고 바닥에 모여 앉아야 했을 정도였다고. 강좌를 듣는 책고집 회원들의 태도 역시 열정적이다. 저자와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강연 뒤에 질문이 이어진다.
"20세기 시민운동이 시민이 아닌 이데올로기가 중심이었다면, 21세기 시민은 개인적인 관심사에 따라 움직이죠. 책고집에 모인 사람들은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꺼이 돈과 시간을 쓰고 자발적으로 책을 읽어요."



작가는 사람이 모이고 책이 모이면서 책고집에서는 놀라운 일이 자주 일어난다며 웃었다. 작은 도서관이나 북카페 이름을 책고집으로 짓고 싶다며 요청해 오고, 대학교수가 책고집에 '무료 인턴'을 자처하기도 하는 것이 그 예다.
최근에는 수원 매향여고 교사가 책고집에서 예절 동아리 학생들의 인문학 강좌를 듣고 싶다고 요청해 왔다. 이에 최 작가는 같은 책고집 회원이자 '내일도 둥근 해가 뜰까요?'의 저자 나하나 작가를 강사로 모셨다. 자신에 대한 예의를 배우는 데 자신보다는 나하나 작가가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책고집을 잘 꾸려가기 위해 최 작가는 '함책' 선정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쓴다. 지금까지 최 작가가 낸 책만 8권이지만, 그는 이제까지 한 번도 '함책'으로 자신의 책을 추천한 적이 없다. 또 출판사나 작가들이 보내는 책도 가급적 거절하고 직접 사서 본다. 그는 "선한 의도라고 해도 뒷받침해주는 능력, 열정, 균형감각이 없으면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며 "책고집이 자칫 '최준영의 공간'이 되지 않도록,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일종의 결벽증이다"라고 덧붙였다.
책고집은 오는 5~6월 인문학 강좌 시즌3을 연다. 이번에는 다산인권센터, 경기민주시민언론연합, 수원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과 함께 공동 기획했다고 전했다. 최 작가는 앞으로 책고집이 단일 공동체가 아닌, 여러 시민단체와 함께 꾸려가기를 원한다며 자신의 바람을 전했다.
"누구나 더 많이 인문학을 접하고 독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 앞으로 책고집이 전국적인 인문 독서 공동체 네트워크가 되었으면 하고요. 더 나아가 전 국민이 책을 고집하는 '책고집화'가 이루어진다면 좋겠습니다."


/출처 : 경인일보 편지수 기자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19041001000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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