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

출판진흥원 7월의 읽을 만한 책

지은이 : - 출판사 : - 발행일 : 2016.07.01 등록일 : 2016.07.14


출판진흥원은 좋은 신간도서에 대한 정보를 일반에 제공해 출판산업과 독서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좋은책선정위원회를 통해 문학예술,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실용일반, 유아아동 분야의 책을 매달 이달의 읽을 만한 책청소년 권장도서로 나누어 선정하고 있다. 7월 추천도서는 다음과 같으며, 자세한 내용은 출판문화산업진흥원 홈페이지(http://www.kpipa.or.kr)에서 볼 수 있다.

좋은책선정위원회 위원(가나다 순)

- 김광억 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 강옥순(한고전번역원 출판부장), 계승범(서강대 사학과 교수), 김서정(중앙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김영찬(서울 광성중 국어교사), 오석륜(시인, 인덕대 일본어과 교수), 이준호(호서대 경영학부 교수), 이진남(강원대 철학과 교수), 이한음(과학 전문 저술 및 번역가), 전영수(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분야

도서명

/역자

출판사

발행일

추천자

문학

예술

우리말 선물

조현용

마리북스

2016.5.15.

강옥순

인문학

지금은 당연한 것들의 흑역사

앨버트 잭/김아림

리얼부커스

2016.4.30.

계승범

낙관하지 않는 희망

테리 이글턴/김성균

우물이있는집

2016.5.20.

이진남

사회

과학

모두가 디자인하는 시대

에치오 만치니/조은지

안그라픽스

2016.5.27.

김광억

마이크로 트렌드 심리학

강한나, 김보름

미래의창

2016.4.20.

이준호

자연

과학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서민

을유문화사

2016.5.30.

이한음

실용

일반

걷기의 재발견

케빈 클린켄버그/김승진

아날로그

2016.4.28.

전영수

유아

아동

나의 아버지

강경수

그림책공작소

2016.5. 8.

김서정

분홍 문의 기적

강정연 글, 김정은 그림

비룡소

2016.4.29.

김영찬


‘아름답다’라는 단어에서 아름의 어원은 무엇일까? 국어학자인 지은이에 따르면 아름은 ‘나’, ‘개인’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다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니, 자신의 가치를 잘 발휘하는 사람이 가장 보기 좋다는 뜻을 담고 있다. ‘최선을 다하다’에서 최선은 ‘열심’이 아니라 ‘가장 선한 것’을 뜻한다. 내가 지금 열심히 한다고 하는 일이 정말로 선한 것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말이다. ‘위기’는 어려운 상황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위험’과 ‘기회’를 합친 말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기회가 더 많은 법이다. ‘인사(人事)’의 한자어를 풀면 ‘사람의 일’이라는 뜻이다. 예절이기 전에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평생을 인사만 잘 해도 잘 살 수 있다. ‘동정(同情)’은 ‘그 사람과 같이 느끼다’라는 본래의 의미가 퇴색된 듯하여 안타깝다. 상대방의 처지에 동참하여 행동으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것이 동정의 참뜻이다.

이처럼 지은이는 사랑, 아름답다, 외로움, 시간, 궁금증, 소중하다, 가짜, 미안하다, 배려, 잡초, 내일, 기억, 나쁘다, 예쁘다, 스승, 미소 등 우리가 일상에서 거의 매일 쓰는 60가지 단어의 어원을 살피고, 단어라는 씨앗에서 발아된 정신, 문화, 풍습, 교훈 등을 자신의 생각과 버무린 뒤, 그것을 정서(情緖)라는 보자기에 싸서 우리에게 듬뿍듬뿍 안겨 준다.

쉬운 글이지만 농익은 내를 유감없이 풍기는 글이다. 따듯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지은이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이 젖어들기도 하고,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나무그늘에 누운 듯 편안해지기도 한다. 말이 주는 감동의 파장은 다양한 결을 갖는다. 사람은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 얼굴의 모양새가 달라진다고 한다. 좋은 생각이 담긴 우리말의 고운 결을 따르다 보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가리라.


무엇인가 신선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주위에서 핀잔을 주고 무시하면 애초의 자기 생각을 포기해버리고 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지만 조롱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자기 생각을 실현시킴으로써 인류문명의 진화과정에 족적을 남긴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이 없었다면, 인류는 여전히 원시사회의 단계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 드러나듯이, 어떤 기기를 지금은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그 기기를 발명해내기 전에는 그런 발명 아이디어만으로도 무시당하고 조롱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일종의 ‘흑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바로 그런 흑역사를 딛고 문명을 발전시킨 다양한 에피소드를 꼼꼼하고도 조리 있게 묶은 교양서이다.

1916년에 라디오가 처음 나왔는데, 라디오가 아직 아이디어 단계일 때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였다. “무선으로 음악이 나오고 사람 말소리가 나오는 상자라고? 그렇다면 상업적 가치가 전혀 없겠는데?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은 메시지를 들으려고 누가 돈을 지불하겠어?” 이런 식의 부정적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라디오가 실제로 탄생한 직후에도 사람들은 그다지 열광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이 처음 나왔을 때도 그저 신기한 물건이라고 인정할 뿐, 사람들의 반응은 라디오 때와 비슷하게 냉담했다. “가족들이 모두 한 자리에 둘러앉아 그 합판상자를 몇 시간이고 들여다보지는 않을 걸? 물건 자체는 신기하지만, 시간과 땀의 낭비일 뿐이다.” 이런 식의 판단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라디오가 없고 텔레비전도 없는 삶을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 이런 예는 부지기수이다. 기차, 자동차, 컴퓨터, 위성통신 등 현대문명을 가능케 한 굵직한 발명품에서부터 지퍼, 면도기, 볼펜, 틀니, 통조림깡통, 포스트잇 등과 같이 우리네 일상생활에 이미 깊숙이 자리 잡은 도구에 이르기까지 이들 모두의 탄생 과정에는 무시와 조롱이라는 역경이 있었다.

창조는 일상의 경험뿐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남들이 흔히 갖지 못하는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진보적이다. 설사 최종결과물을 얻지 못한 채 도중에 폐기하더라도, 그런 실패조차도 미래를 향한 소중한 경험이요, 자산이다. 일상의 틀에 묶여 허덕이는 현대인에게 이 책은 생각의 변화를 주문한다.


우리는 흔히 희망을 가진 사람을 낙관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반면 절망하는 사람을 비관주의자로 본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낙관주의자에게는 진정한 희망이 없다. 낙관주의자는 그저 현실을 긍정하기만 하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기 때문에 그에게는 희망이 필요 없다. 인간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절망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실존 자체에 대해서도 절망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희망을 잃어버릴 수는 있지만 절망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희망의 반대는 절망이 아니라 용감한 체념정신이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기 때문에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희망은 인내, 신뢰, 용기, 근면, 박력, 관용, 끈기와 같은 것을 만들어주는 미덕이다. 진정한 희망은 우리로 하여금 진실을 직시하고 바라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게 하는 삶의 태도이자 습관이다. 반면 기질적 낙관주의는 진실에 눈을 감고 노력 없이 단지 바라기만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미덕을 길러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게으름과 무지, 비겁함과 무책임이라는 악덕을 양산해낸다.

이 책의 저자 테리 이글턴은 얄팍한 낙관주의와 긍정주의가 현실을 무시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못 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낙관주의에 빠진 희망은 거짓 희망이고 절망적인 희망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낙관주의와 긍정의 과잉은 진실에 눈을 감기 때문에 근거 없는 가짜 희망이고, 실현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기 때문에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희망, 즉 절망에 불과한 것이다. 긍정의 과잉에 빠진 낙관주의자들은 근거 없이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 때문에 희망이 불필요하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낙관주의는 학살, 강간, 노예제와 같은 것들도 선을 위한 필요악으로 정당화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하면 된다.’나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다.’는 긍정의 과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그래서 의심과 불신, 비관주의는 불온한 태도로 여겨지고 자신감의 결여는 정신적 질환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측은 오히려 현실을 보지 못하고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기 최면에 빠진 낙관주의자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낙관주의에 빠지지 않고 진정한 희망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미래 세계가 풍요와 발전의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고 우리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깊이 감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더욱 정치가와 정부기관에게 그 책임을 묻고 해결책을 내어놓을 것을 요구하는 시민정치를 다양하게 벌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우리는 결코 어떤 제도와 기술에도 만족한 답을 얻어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삶을 책임지고 주체적으로 해결할 의지와 실천의 능력이다. 빈곤, 낙후, 격차, 결핍, 부조리, 불공정, 위험, 부정과 불의, 불편, 비효율성, 소외 등등 우리 주변의 혹은 내가 속한 현실적 환경에 대하여 우리가 변화를 위한 설계를 하고 실천을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이제는 해야만 하는 당위이다. 그 출발은 내 바깥에 있는 제도와 법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방식을 새로이 설계하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과 주변의 조건과 환경을 디자인하는 능력과 아이디어를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을 구체화하는 기술의 훈련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전문적인 기술로서의 디자인 능력을 갖춘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 우리는 자기의 세계를 변혁시킬 디자인을 수립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게 된다. 즉 삶의 방식을 디자인하는 마음과 디자인의 기술의 결합을 통하여 우리는 스스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이 사회적 변혁을 위한 디자인 운동이다. 이는 한 지역 공간 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 열려있고 무한히 펼쳐나갈 수 있는 작은 실천으로 시작된다.
이 책은 전 세계에서 소박하게 펼쳐지고 있는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 혹은 디자인을 통한 사회혁신 운동의 다양한 실천의 예들을 소개한다. 도농 간 네트워크를 통한 식품안전 보장운동, 이웃 간 돌봄의 체제 만들기, 쾌적한 동네 만들기, 의료서비스 체제의 지역적 보완책 만들기, 지역 안전망의 자발적 구성, 도심 속 시민의 공공의 장소 확보 등 ‘작고, 지역적이며, 열려있고, 서로 연결된’ 안전과 행복과 효율과 가치의 삶의 공간과 방식을 주민들이 디자인한다는 것은 내가 주체가 되어서 이루는 가장 확실하고 구체적이며 새로운 방식의 사회개혁인 것이다.


​혹자는 메가 트렌드에서 마이크로 트렌드로의 변화를 이 시대의 중요한 트렌드라고 이야기한다. 기존 경제학의 주장을 뒤집은 롱테일의 법칙처럼, 마이크로 트렌드는 소수의 동향, 미세한 움직임이 새롭고 의미 있는 트렌드를 읽어내는 데 필수적이며, 여기에 관심과 통찰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자체가 마이크로한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인간 심리에 관한 마이크로 트렌드를 다루고 있다. 인간 심리에 관한 12가지 접근과 분석을 토대로 지금의 라이프 트렌드를 다양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서, 앞으로의 라이프 트렌드에 대한 신선하고 흥미로운 예측을 담아내고 있다. 책은 내면의 인간 심리, 그 욕구와 욕망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표면의 현상과 그 방향을 꿰뚫어보고, 조망할 수 있는 출발점이자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컨텍수머, 콘텐츠가 아니라 컨텍스트를 구입하다’, ‘기억의 포장술, 경험을 재구성하다’, ‘뇌가 섹시한 그들, 두뇌를 뽐내다’, ‘로컬을 소비하고 로컬로 표현하라’, ‘레어한 그들을 시험에 들게 하소서’, ‘제로 커뮤니케이션, 한눈에 통하는 Z세대의 소통 방식’, ‘정답 없는 세상, 인생의 가이드를 찾는 사람들’, ‘온디맨드 관계, 사람을 골라보세요’, ‘역할 과부하로 인한 부담감에서 벗어나다’, ‘보이지 않는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다’, ‘뇌의 휴식을 꿈꾸는 디지털 시대의 사람들’, ‘기승전흙, 사바나를 코스프레하다’로 이어지는, 주제만으로도 궁금한 12장의 내용은 그저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치부하기엔 꽤나 날카로운 현실적 시선을, 그냥 현상을 세심하게 분석한 수준으로 간주하기엔 재기발랄한 통찰과 상상이 균형 있게 잘 녹아들어 있다. 특히 책 속의 이야기를 자신에게 포개어보면, 그 메시지는 부인하기 어려운 설득력과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메시지는 고스란히 실용적 방안으로 전환 가능한 잠재력 또한 지니고 있다.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 휴양을 의미하는 ‘리크리에이션recreation’은 단어 자체에 재창조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독서를 통한 쉼의 과정이 창조적 방향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책이 제시한 인간 심리에 기초한 트렌드를 따라 현재를 해석하며,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다 보면, 약간은 굳어 있는 자신의 생각에 ‘+α’의 유연함을 양념처럼 더해줄 수 있을 것이다.

떠올리기만 해도 징그럽게 느껴지는 기생충을 멋있게(?)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서민 교수의 최근작이다. 이 책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재미있다”는 것이다. 대상 자체가 굳이 자극적으로 쓸 필요가 없을 만치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하는 데다가, 저자가 자신의 실수까지 농담거리로 삼겠다고 아예 작정하고 쓴 덕분이다. 그래서 징그러운 기생충 사진을 보면서 키득거리는, 남 보기에 좀 안 좋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 남의 시선을 끌 만한 곳에서는 되도록 읽지 않기를 권한다.
차례를 훑어보면 우리가 아는 기생충이라고는 머릿니밖에 없는 듯하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보면 구충, 동양안충, 육극악구충, 왜소조충 등 우리가 듣도 보도 못한 온갖 기괴한 기생충들에 감염되곤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게 된다. 피부 밑에서 터널을 뚫으면서 다니는 녀석도 있고, 맨발로 돌아다닐 때 발에 붙었다가 피부를 뚫고 들어가서 혈관과 폐와 심장을 거쳐 원하는 곳에 뚫고 들어가 자리를 잡는 녀석도 있고, 어떤 사람의 몸속에는 별 증상을 일으키지 않은 채 수백 마리씩 들어가 사는 반면에 어떤 사람에게는 서너 마리만 들어가도 심각한 증상을 일으키는 녀석도 있다. 수십 년 동안 아무 증상도 일으키지 않다가, 어느 날 문득 기분이 상한 양 병을 일으키는 녀석도 있다. 다양한 기생충에 걸려 고생한 이들의 사례를 읽다보면, 왠지 속이 거북해지고, 피부가 근질근질해지고, 눈 가장자리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올지도 모른다. 기생충 망상증의 전조일지 모르니, 그럴 때는 잠시 책을 덮는 편이 낫다. 내친 김에 횟집에라도 가서 저자 말대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생선회의 맛에만 집중해도 좋다. 고래회충 같은 벌레가 나온다고 해도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놀라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겁을 주기 위해 기생충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기생충에 걸리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환경이 우리나라보다 더 잘 보전되어 있어서, 기생충도 그만큼 잘 살고 있는 곳에서는 몸을 좀 사릴 필요가 있다는 말도 해준다. 주의할 필요는 있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말라는 어투로, 징그럽지만 묘하게 흥미를 끄는 다양한 기생충들의 별난 삶을 소탈하고도 흥미진진하게 묘사한 책이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엄격한 가부장 사회를 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마치 그게 수백 년 전의 일인 듯, 아버지의 자리가 위태롭기 그지없다. 무력하거나 폭력적이어서 부정적인 아버지에 대한 이런저런 예는 차치하고라도, 아이의 3대 성공 조건에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과 함께 ‘아버지의 무관심’이 들어간다지 않는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아버지는 이해도 사랑도 받지 못하면서 소외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아버지를 위로하고 재조명하는 일에 요즘 어린이 책이 나서고 있다. 어린이 책, 특히 그림책에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전면에 나선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가 90년대 중반 등장했을 때에는 ‘아빠’도 그림책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게 거의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그 뒤 『아빠 책 읽어주세요』나 『꼭 잡아주세요 아빠』처럼 아빠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이 간간이 선을 보였지만 대부분이 외국 책이었고, 책 읽기, 자전거 타기, 말놀이 같은 특정 상황에서 아빠의 든든한 역할이 강조되곤 했다.
그런 맥락에서 『나의 아버지』는 독특하고 중요한 자리에 놓이는 것 같다. ‘나’의 아버지라지만, 특정한 하나의 캐릭터가 아닌 여러 아이들의 여러 아버지가 등장하면서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의 의의가 펼쳐진다. ‘아빠’가 아닌 ‘아버지’라는 호칭은 이 존재가 아동기뿐만이 아니라 인생 전체의 길에서 조명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렸을 때 아빠는 뭐든지 잘하는 사람이고, 나를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서툴어도 격려해주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이다. 그런 아빠가 뒤에서 버팀목이 되어준 덕분에 아이들은 자라고 능숙해진다. 그리고 자만한 나머지 실패한다. 그때 잊고 있던 아버지를 돌아보면......
이런 일상적이고 따뜻한 감성은 아마도 우리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에서 거의 뒷자리에 숨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앞으로 끌어냈다는 점이 이 그림책의 소중한 특징이다. 그래서 책의 앞표지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라는 존재에게 요구되는 에너지를 상징하는 듯한 강렬한 빨강 속에서, 정작 아버지의 색깔은 부드럽고 서늘한 하늘색이다. 굳이 두꺼운 종이를 오려내 아버지 형태 속의 하늘색을 보여주는 표지. 아버지 안에 그려져 있는 조그맣고 하얗고 여린 아이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아빠 안에 내가 있네?”
통계청에 의하면 이혼, 별거, 사별 등을 이유로 부모 중 한 사람과 자녀로 구성된 가정을 의미하는 한부모 가정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전체 가구에서 한부모 가정이 차지하는 비율이 2005년 8.6%에서 2011년 9.3%로 증가했고 한부모 가정의 형성 원인은 사별 29.7%, 이혼 32.8%, 미혼모∙부 11.6%이라고 한다(통계청, 2013). 우리 주변의 열 집 중 한 집이 한부모 가정이고 그 한부모 가정의 30% 정도는 엄마나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한부모 가정이 된 경우 하루아침에 가족의 기능이 해체되거나 변화하고 대인 관계의 축소, 자녀 양육의 문제, 경제적 어려움 등을 겪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견디기 힘든 것이 심리적 소외감과 상실감이 아닐까 한다.
초등학교 5학년생인 박향기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학교에서 말썽만 부리는 아이가 되었고 향기의 아빠 역시 커다란 상실감 때문에 아들을 돌보는 일은 물론 바깥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술도 많이 마신다. 이러한 아빠와 아들에게 엄마가 손바닥만한 요정의 모습으로 선물처럼 돌아온다. 주어진 72시간 동안 각각 세 번의 저녁, 아침, 점심을 같이 먹게 되고 식당과 시장, 공원 등 셋이 함께 하던 일상의 경험을 하면서 차츰 상실감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키운다. 다시 가족에게 돌아온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먹는 것과 시시한 시장 구경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돌아다니는 이러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가족의 곁으로 돌아왔다가 해가 지는 모습과 함께 사라져 버린 엄마는 남겨진 아들과 남편에게 엄마가 없다고 ‘안 행복한 우리집’이 아니라, 비록 엄마는 없지만 언제나 가족과 함께 있다는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낸다면 ‘그래도 행복한 우리집’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마법처럼 돌아온 엄마가 다시 사라질 때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는 남겨진 가족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식탁에 둘러 앉아 함께 밥을 먹고, 거실에 둘러 앉아 함께 TV를 보고, 시끌벅적 대청소를 함께 하고, 집 앞의 공원을 산책하는 일, 함께 손잡고 시장이나 마트에서 장을 보는 일은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이다. 가족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하자. 마치 내일 떠나갈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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