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6월의 읽을 만한 책

지은이 : - 출판사 : - 발행일 : 2017.06.01 등록일 : 2017.06.01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6월의 읽을 만한 책

‘6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는, 한반도 주변 다양한 해산물의 역사·문화·풍속· 지리 등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흥미롭게 풀어낸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황선도/서해문집), 세계 미술을 선도하는 뉴욕을 배경으로 도시 곳곳에 형성된 퍼블릭 아트를 직접 경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모두의 미술: 뉴욕에서 만나는 퍼블릭 아트』(권이선/아트북스), 어른들이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진정한 어른으로 대접받기 위해 필요한 의무를 알려주는 『어른의 의무』(야마다 레이지/김영주/북스톤) 등, 10종을 선정하였다.


좋은책선정위원회 위원(가나다 순)

- 김광억 위원장(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강옥순(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계승범(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김서정(동화작가, 아동문학평론가),
김영찬(서울 광성중학교 국어교사), 이근미(소설가), 이정모(서울시립과학관장),
이준호(호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전영수(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허남결(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식당에서 젊은 부부 사이에 앉아 있는 아이의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흔들거리는 유모차에 탄 유아의 고사리 손에서도 스마트폰의 화면이 번뜩인다. 저 빛과 소리는 과연 어디를 향한 것일까? 저맘때 아이들에게 정작 보여줘야 할 것은 푸르른 나무와 파닥거리는 물고기, 생명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달팽이산 아래 별장지기로 일하는 아버지와 사는 주인공 소금이. 원래 이름은 이룸이었고 출생신고하면서 이름이가 되었지만 동물들에게는 소금이라고 불린다. 소금이는 학교에 다니지 않지만 숲속의 나무와 풀, 동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산신령 할아버지와 도깨비들과도 어울려 살아간다. 숲에 사는 동식물들과 힘을 합쳐 온천과 골프장을 건설하려는 어른들의 욕심에 맞서 숲을 지켜낸다. 작품 내내 등장하는 땅과 동식물의 이름은 고운 우리말의 속살을 보여주고 산신령과 도깨비 이야기는 우리 고유의 설화에 맥이 닿아 있다. 판타지이되 파괴적이지 않으며 환상적이되 생명성에 뿌리를 둔 아름다운 동화이다. 더욱이 작가가 병마에 시달리며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이기에 작가의 생명에 대한 간절함이 이야기 곳곳에 살아 숨 쉰다. 작가는 자신의 생명을 이 작품의 등장인물에게 오롯이 쏟아 넣은 것은 아닐까?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만나는 동식물 세밀화를 보며 새로운 생물의 이름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문명화된 세상, 인공지능이 일반화되어 가는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기계나 영상의 현란함이 아니라 자연의 향기와 소리에 다가설 수 있는 열린 마음이다. 모든 생명은 서로 마음을 나누고 도우며 살아간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생명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마음을 우리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은 나중이 없다. 스마트폰을 끄고 아이와 함께 동화책을 펼치는 일,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백희나의 그림책들에는 먹을 것이 주요 모티프로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구름빵, 달 샤벳, 꿈에서 맛본 똥파리, 장수탕 선녀님의 요구르트 등. 그리고 이번에는 알사탕이다. 이 모티프들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현실과 환상이 버무려진 음식으로, 현실의 팍팍함을 혹은 달콤하게 감싸고 혹은 시원하게 날림으로써 등장인물들에게 카타르시스와 위안을 준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등장하는 알사탕은 혼자 놀던 동동이를 주변 인물과 동물, 심지어는 사물들과도 소통하게 하면서 일상에 촉촉한 온기를 불러오는 역할을 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무리지어 노는 아이들에 섞이지 못하고 혼자 구슬놀이를 하던 동동이. 구슬을 더 사러 들른 구멍가게에서 할아버지가 건네는 알사탕을 받아 입에 넣자 어디선가 소리들이 들린다. 옆구리에 리모컨이 끼여 아픈 소파, 나이 먹어 동동이와 놀기가 힘든 강아지, 퍼붓는 잔소리 속에 ‘사랑해’라는 말을 숨기고 있는 아빠, 하늘나라에서 동동이를 응원하는 할머니... 이런 환상 속의 말들 덕분에 동동이 마음속의 외로움과 서러움, 야속함들이 스르르 녹아 없어진다. 마치 입 안에서 녹는 알사탕처럼. 그렇게 위로와 힘을 받고 난 동동이는 마지막 알사탕을 입에 넣지만 이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대신 동동이의 입에서 그동안 그토록 꺼내기 힘겨웠던 말이 나온다. “나랑 같이 놀래?”동동이 혼자 하는 구슬치기에도 입가에 미소는 어리지만, 친구가 생긴 동동이 집 앞에 놓인 두 대의 스케이트보드에는 마음이 폭 놓인다. 여전히 감탄스러울 정도로 세밀하게 만들어낸 피규어들과 배경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이들이나 강아지의 몸짓과 표정이 전작보다 더욱 유려해지고 풍성해진 듯하다. 누구 한 사람 없는 가족에게도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보내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 덕분에 엄마 없는 동동이에게 대책 없이 쏠리는 동정심도 자제할 수 있다. 아빠와 강아지, 친구와 소파와 함께 씩씩하게 지내렴, 동동아.

풀 프루프는 바보를 방지하는 시스템이다. 즉,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실수 내지는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 지극히 안전하게 설계된 시스템을 의미한다. 매슬로우(A. Maslow)에 따르면 인간은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인 생리적 욕구 바로 다음으로 안전과 안정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이러한 안전과 안정의 추구를 위해 불확실성을 회피하고, 환경을 통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문명의 발전을 일구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모든 불확실하고 위험한 상황과 조건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통제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 실제로는 더 위험한 상황과 조건, 그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안전의 위험성과 위험의 안전성’이라는 안전시스템의 역설을 다루고 있다. 보이는 이면에 감춰진 보이지 않는 비밀이 갖는 흥미로움과 신비로움은 음모론처럼 우리의 관심을 확장시키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이 많은 경우 객관성이나 신빙성이 결여된 ‘아니면 말고’ 식의 상상력에 기반 한다면, 이 책이 제시하는 우리가 몰랐던 아니 인식하지 못했던 안전시스템의 문제는 매우 실제적이고, 놀랍다. 그렇게 춥지 않은 겨울 어느 밤, 매끈하게 잘 닦여진 도로를 에어백 등 안전한 장치를 두루 갖춘 최신형 자동차를 몰고 달릴 때, 사람들은 안전하다는 인식 속에 조심성을 잃은 채 운전을 하거나 과속을 하게 되고 이는 사고로 연결되곤 한다. 안전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안전에 대한 인식을 약화시키고, 책 표지에 그려진 것처럼 풋볼 선수들의 머리를 안전하게 하려고 고안한 헬멧이 너무 단단해서 오히려 뇌진탕의 위험을 높인다. 즉, 안전을 위한 조치가 뜻하지 않게 위험을 조장하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러한 역설에 대해 오히려 작은 위험을 감수할 때 더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과도하지 않게,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수용하는 유연한 안전시스템, 의미 있는 제안이다.

어른부재의 시대다. 아무리 봐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보인다. 요컨대 어른아이가 판친다. 정치권이든 직장이든 볼썽사나운 나잇값 반비례 인물들이 적잖다. 그래놓고선 나이만 내세워 어른대접을 강요한다. 이들에게 나이는 권력이다. 횡포를 부릴 절대조건이다. 이를 직시하는 연장자로서의 훌륭한 어른은 생각보다 많잖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세대단절은 자연스럽다. 모두가 불행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단순히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일 수는 없다. 어른에겐 의무가 뒤따른다. 연장자의 험담이 잘 허용되지 않는 한국사회임을 감안하면 후속세대가 느끼는 어른부재의 체감정도는 더하다. 어른공경의 유교적 위계질서의 가르침이 여전해 함부로 거역하지 않을 따름이다. 속내는 타들어간다. 노인과 어른은 다르다. 생물적 가령(加齡)이 정신적 존경을 담보하진 않는다. 따라서 어른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버릇없음을 탓하기 전에 믿고 따를 지혜주머니로서 본보기가 되자면 학습은 필수다. 믿고 따를 멋진 어른에겐 노력이 전제된다. 어른공부가 절실하다. 책은 ‘어른의 의무’로서 3가지를 제시한다. 나잇값에 맞는 존경받는 어른에게는 △불평하지 않기 △잘난 척하지 않기 △기분 좋은 상태 유지하기 등 3가지 생활습관이 있다는 경험칙을 녹여냈다. 저자가 사는 일본은 초(超)고령사회다. 4명 중 1명이 65세를 넘겼으니 고령인구의 제반문제는 일찌감치 폭넓게 경험했다. 결론은 ‘노인→어른’을 위한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 노인에 머물면 후속세대의 포기는 더 공고해진다. 어른수업은 태도와 행동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자기경험에 도취되기보다 귀를 열어주라는 얘기다. 그 실천전략이 3가지 어른의 의무다. 무지와 겸손을 알아야 어른인 법이다. 어른이 못 된다면 적어도 꼰대는 되지 말아야 할 터다.

대한민국의 현재 합계 출산율은 1.17명. 이 출산율이 유지된다면 2016년 약 5천만 명이었던 대한민국의 인구수는 약 120년 후에는 천만 명으로 급속히 줄어든다. 줄어든 인구수는 늘지 않고 계속 하락세를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2750년!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사람은 제로! 이렇게 해서 한국인은 소멸할지도 모른다. 인구절벽에 매달려 인류 최초로 소멸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에게는 그 탈출법이 간절히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배우 앤 해서웨이는 UN 연설회장에서 세계적인 배우인 자신마저도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일과 가정이란 두 가지 갈림길에서 불안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장 큰 문제는 육아! ‘독박육아’라고 부를 만큼 여성에게만 지워진 육아의 문제, 동물들은 과연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영하 60도의 혹한 속에서 4개월 간 먹지도 않으면서 알을 품는 황제펭귄이나 임신과 출산을 담당하는 해마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펭귄과 해마의 수컷의 희생이 딱히 육아라고 할 수는 없다. 이에 반해 오스트레일리아에 서식하는 새인 에뮤는 수컷 혼자서 육아를 한다. 암컷은 알을 낳고는 사라진다. 수컷은 8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서 알을 품는다. 그리고 18개월 동안이나 계속되는 육아를 혼자 담당한다. 번식기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알을 품고, 알에서 병아리가 부화하면 새끼들을 데리고 방랑하는 나날들, 그것이 수컷 에뮤의 삶이다. 인간 여성과 닮지 않았는가! 『수컷들의 육아분투기』는 자연계의 수컷들이 육아를 어떻게 하는지 흥미롭게 소개한 책이다. 늑대 거미, 프레리도그 등 수컷들의 자식 사랑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육아는 암컷만의 역할이 아니라, 수컷의 협력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구 소멸의 위기 앞에 있는 대한민국 남성들이 가슴을 치며 읽어야 할 책이다.

오늘날 갈수록 독을 가득 품은 거칠고 혐오스런 말과 행위로써 상대방 죽이기 경쟁이 우리들 사이에서 심해지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상대방이 사람으로서 누릴 존엄성을 파괴하고 유린하는 것을 거침없이 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자유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혐오표현을 거절하거나 그로부터 보호를 받을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문제는 아직도 혐오스런 언행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심각하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혐오표현이란 상대방을 공격하는데 동원되는 모든 종류의 말, 글, 몸짓, 표정, 몸의 치장 혹은 변장과 복장, 소리, 예술의 형식을 빌은 각종 표현행위 등이 포함되는데 세대, 소수민족, 여성, 노약자, 낮은 계층, 이민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하여 가해지는 모든 모욕적이고 차별적인 표현방식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는 최근 들어 정치적 입장과 시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상대방에게 도저히 정상적인 상태로서는 참을 수 없는 정도의 모욕과 모멸과 인간적 존엄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혐오표현을 조직적으로 퍼붓는 것이 일상화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과연 사람으로서 정상적으로 소통을 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인지 조차 의심을 할 정도로 심각한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혐오표현의 난무 앞에서 이를 규제하자는 측과 표현의 자유의 근본주의자들 사이에 논쟁이 전개된다. 저자는 이 문제를 단순히 윤리적 조언을 넘어서 법과 사회철학의 실질적인 차원에서 논의하면서 자유가 정당성을 인정받는 선과 해악의 경계를 논한다. 자기주장의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열한 공격 기술을 사용하면서 민주와 자유의 개념을 무한적이고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집단적 광기에 빠져버리는데 익숙해진 우리들이 이제는 차분히 자유와 인간의 존엄 그리고 사회적 질의 문제를 함께 엮어 생각할 때이다. 표현의 자유가 해악이 아닌 진정한 선의 실천 수단이 되도록 이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사는 것과 먹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우리는 먹는 만큼 살고 사는 만큼 먹어야 하는 존재다. 오죽하면 ‘지금의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먹은 바로 그것이다’라는 말까지 있을까.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는 오랫동안 물고기를 연구한 해양생물학자가 먹거리로서의 해산물 이야기를 풍부한 관련 지식과 함께 맛깔스러운 문장으로 풀어쓴 책이다. 글을 읽다보면 마치 싱싱한 멸치회나 먹음직스러운 참꼬막 한 접시가 바로 우리 눈앞에 놓여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동감이 넘친다. 책 속에는 해삼, 멍게, 개불, 전복, 소라, 굴, 꼬막, 바지락, 도루묵, 삼치, 방어, 돔, 다금바리, 다랑어, 연어 등 우리의 음식문화와 매우 친숙한 해산물 이름들이 줄줄이 나온다. 그러나 단순히 먹는 대상으로서만 해산물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 주변의 해양생물과 관련된 역사, 문화, 풍속, 지리, 언어, 가치, 지식, 윤리 등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들이 저자의 요리솜씨를 빌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먹음직스러운 밥상으로 재탄생한다. 가령, 제주도 해녀의 겨울철 물질에 대한 역사적 배경설명은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임금에게 바칠 전복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겨울에도 차가운 물 속으로 몸을 던져 숨 가쁜 자맥질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란 말이다. 이처럼 제주도 여성들은 오직 살기 위해서 얼음장 같은 바닷물을 삶의 터전이라는 이름으로 숙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했다. 갑자기 산다는 것과 먹는다는 것의 엄숙한 관계를 떠올려 본다. 한편, 저자는 해상생물의 구체적 생태환경을 설명할 때는 어떠한 전공서적에도 뒤지지 않는, 말 그대로 전문가적 식견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끝으로 저자는 느림과 기다림의 이로움을 거듭 상기시키는 가운데 ‘보다 깨끗하고 보다 공정한’슬로피시 운동의 철학윤리학적 의미를 강조한다. 여기서 우리는 저자와 많은 부분에서 서로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21세기에 들어서고도 상명하복 식의 중세적 위계질서가 여전한 사회였다. 이는 민주주의니 주권이니 시민이니 하는 주요 단어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한 한국인이 그동안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벌써 200여 년 전에 절대군주이던 국왕의 목을 치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은 영국과 프랑스의 역사를 보며, 우리는 그것을 부러워하거나,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부 역사학자들이 동학농민봉기(1894)를 크게 띄우기도 했지만, 전봉준을 비롯한 지도자들 누구도 당시 국왕이던 고종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국왕의 명령에 순응하여 자진 해산하는 ‘낭만적’ 모습을 보이기까지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식민지 시기의 폭압적 독재를 겪다보니, 해방 후 한국인은 민주주의를 경험한 적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에서 헌법상으로만 민주주의 체제를 맞았다. 그러니 말은 민주공화국이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20세기 냉전시기 독재를 일삼은 대통령들을 국부로, 그 부인을 국모로 부르는 한국인이 너무 많았다. 그들은 국민이 아니라 여전히 백성일 뿐이었다. 한국의 정치사회가 여전히 중세에 머물렀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현실에 닿아 있었다. 󰡔왕의 도주󰡕는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루이 16세가 어떤 행동을 하다가 어떻게 몰락하고 처형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혁명 후에도 루이 16세는 국왕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그런 절충(개혁)의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고 끝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백성이길 거부하고 스스로 일어나 시민이 되어 앙상 레짐(구체제)을 무너뜨린 최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일독할 가치가 차고 넘치는 책이다. 전문 학자가 쓴 수준 높은 교양서라, 읽는 재미와 유익함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탈북자나 그들을 취재한 이들이 전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작가가 북한을 문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북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의 현역작가로 1950년생인 반디가 1989년부터 1995년까지 쓴 7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힘든 과정을 거쳐 북한에서 반출되어 2014년에 국내에서 출판되었을 때 별 반응이 없었다. 전 세계 20개국에서 출간한 데다 이 작품을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가 영국 PEN 번역상을 수상하면서 국내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세계가 소련 작가 솔제니친에 비유하며 놀라움을 표하는 이유는 이 소설이 북한 주민들의 내밀한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출신성분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남편을 보며 피임약을 먹는 아내(탈북기),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통행증 없이 길 떠났다가 감시원에게 체포되는 사내(지척만리), 마르크스와 김일성의 대형 초상화에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 때문에 추방당하는 가족(유령의 도시) 등 등장인물들의 구체적인 처지와 절망적인 상황이 가슴을 깊게 찌른다. 이 책은 북한 사람들의 생각을 날 것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귀하다. 그 속에서도 효도하려 애쓰고 사람의 정을 느끼려는 안간힘에 감동과 절망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반디는 한 올의 희망도 없는 북한 사회를 목소리 높여 고발하기보다 유려한 문학적 필치로 진정성 있게 그려내 엄청난 울림을 만들었다. 조금의 여지도 아량도 없는 북한 사회를 거의 잊다시피 한 세계인에게 ‘우리가 이렇게 버티고 있다’는 것을 갈피갈피에 담았다. 가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억압 속에서 어떻게 숨 쉴 구멍을 만드는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 하는 가혹한 힘은 대체 뭔지, 반디는 무심한 듯한 필치로 강하게 두드려낸다. ‘겨울 해는 중대가리에 원두콩 굴 듯’같은 북한 특유의 수식어와 ‘흥락한 감정의 희억이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는 식의 독특한 표현법을 맛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소설을 읽으면 북한은 같은 언어를 쓰는, 함께 가야할 민족이라는 걸 더욱 실감하게 될 것이다. 작가의 체험과 통찰력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수작이다

퍼블릭 아트가 뭐냐고? 5월 20일 토요일, 25만 명이 다녀갔다는 서울의‘7017길’이 바로 퍼블릭 아트, 공공미술의 대표적인 예이다. 곧, 공공장소에 놓여 있어 누구나 일상에서 보고 즐길 수 있는 ‘모두의 미술’을 말한다. 굳이 화랑을 찾지 않아도 되고,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서울의 공공미술’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청계광장에 20미터의 높이로 우뚝 서서 위용을 자랑하지만, 그 안에 작은 샘을 담고 있는, 클래스 올덴버그의 ‘스프링’이다. 또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앞에서 일 년 열두 달 망치질을 멈추지 않는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해머링 맨’도 빼놓을 수 없다. 해머링 맨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성실한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작품이 가장 크다고 하니, 작가가 업무 시간이 가장 긴 우리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고 만든 것일까? 뉴욕은 공공미술의 선두 주자이다. 건축물, 공원, 거리 곳곳마다 예술품이 넘쳐난다. 서울의 7017길도 뉴욕의 하이라인파크를 벤치마킹하여 만든 것이다. 버려진 고가 철길에 풀과 나무들이 자생하는 걸 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철거하려는 시 당국에 맞서 공원으로 바꾼 것이다. 그곳에서는 연중무휴로 작가들의 설치미술전이 펼쳐진다. 예술의 힘은 위대하여 그곳 주변은 작가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에 힘입어 아름답고 활기 찬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뉴욕의 공원과 거리에는 퍼블릭 아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기관이 있어서 도시 환경을 조성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뉴욕 시의 문화예술정책을 바탕으로 퍼블릭 아트 프로젝트가 어떻게 운영되고, 공공의 공간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기능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소개하고 있다. 저자 권이선은 글 반, 사진 반, 뉴욕을 수놓은 멋지고 값진 설치미술 작품들을 선별하여 책에 빼곡히 담았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이니, 독서의 즐거움을 넘어 예술이 전하는 전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출판진흥원은 좋은 신간도서에 대한 정보를 일반에 제공해 출판산업과 독서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좋은책선정위원회를 통해 문학예술,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실용일반, 유아아동 분야의 책을 매달 ‘이달의 읽을 만한 책’과 ‘청소년 권장도서’로 나누어 선정하고 있다. 6월의 추천도서는 다음과 같으며, 자세한 내용은 진흥원 홈페이지(www.kpipa.or.kr)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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