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작은도서관신문] 책 읽고 싶어지는 독서문화프로그램 만들기

책 읽고 싶어지는 독서문화프로그램 만들기
서울의 한 작은도서관을 방문했다가 초등 5학년 남자아이를 만났다. 학원가기 전에 잠깐 도서관에 들렀다는데 펼쳐놓은 독서노트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깔끔한 글씨와 세심하게 그려 넣은 그림이 무척 훌륭했다. 쑥스러워할까봐 언뜻 봤는데 물고기 한 마리가 여유롭게 노닐고 있는 어항 그림이 보였다. 아이는 물고기가 자랄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수초어항을 아빠에 비유했다. 아이의 생각에 공감한다. 작은도서관에서 어린 동생들을 돌봐주는 도우미를 한다니 아이가 더욱 대견스러워 등을 두드려 주며 “잘 커라”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10년 동안 한자리에서 작은도서관을 운영해온 분들이 이 아이를 ‘도서관의 아이’로 자라게 한 것이다.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다 보면 이용자들의 독서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된다. 작은 공간은 이용자와 운영자 간의 밀착도를 높여준다. 이것이 작은도서관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용자들이 관심 있어 하는 분야의 책들을 적절한 시기에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 운영자로서 보람을 느낀다.

작은도서관의 독서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과정에서도 먼저 생각할 것은 ‘책’이다. 그런데 책이 빠진 기획이 범람하는 것이 현실이다. 독서지도라는 말을 흔히 쓴다. 민간자격증으로 발급되는 독서지도사가 수없이 배출되고 사교육현장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독서지도가 존재한다. 도서관에서도 독서지도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이 독서문화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지도라는 말 속에 깊게 배어 있는 공급자와 수혜자 간의 관계는 상하 위계가 있으며 권위적이다. 잘 모르는 약자와 좀더 아는 강자의 관계에서 해답이 있는 답안을 요구받고 정답을 이야기해야만 잘된 독서지도가 된다. 독서지도에서는 책 읽는 즐거움이 사라진다. 이처럼 학습 같은 책읽기를 하다 보니 평생 꾸준히 책을 읽기가 힘들고 책과 멀어지게 된다.

작은도서관의 독서문화프로그램은 사람들에게 책을 읽고 싶게 만들고, 새로운 에너지를 발동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독서문화프로그램이 일방적이지 않아야 하며 이를 위해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 독서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가장 우선할 것은 이용자들을 파악하는 일이다.
지역의 특성, 주 이용자 층, 주 이용 시간대 등이 사전 전제가 되어야 좋은 기획이 나올 수 있다. 때로는 새로운 이용자 층을 형성하기 위한 기획도 필요하다. 농촌에 소재한 작은도서관의 경우 어르신들의 문해 교육이 가장 우선시되는 독서문화프로그램이다. 책은 읽는 방법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용자 중심으로만 생각하여 영유아 및 초등 저학년 대상의 독서문화프로그램만 기획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교교육과 사교육에 지친 고학년과 청소년 대상의 프로그램을 한번 시도해보자. 주말에는 성인 남성을 위한 독서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해보는 것도 좋다. 도서관 이용이 가장 취약한 대상 층을 향한 고민을 통해 보다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독서문화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다. 실패를 통한 경험의 축적은 언제든지 다시 원점보다 앞선 출발을 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

■ 이용자의 주변인과 어떻게 함께할지 고민해야 한다.
대다수 작은도서관에서 ‘책읽어주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운영자가 직접 읽어주거나 자원활동가들이 돌아가며 읽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좀더 발전시켜 참여하고자 하는 아이들의 부모들도 함께할 수 있도록 기획해보자. 우선 프로그램 참여를 희망하는 부모들을 위한 강좌를 열어 아이 연령대에 맞는 좋은 책을 추천한다. 읽어주기에 앞서 주의할 점을 알려주고 시연을 통해 아이들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미리 체험해 본다. 이를 토대로 부모들은 책 읽어줄 순서를 정하고 그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형태로 기획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아이들이 읽을 책을 도서관에 전시하고 책을 정하는 작업에도 참여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아이만 좋은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고 아이만을 대상화시키는 작업을 멈추자. 아이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부모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권하면 더욱 좋다.


<가족 합창단이 함께 부르는 책노래>
■ 제2의 창작물을 표현하는 기회를 갖자.
책의 원작이 바탕이 되어 그림이 그려지고, 노래가 만들어지고, 연극으로 각색되고, 영상에 담기고, 인형으로 제작되고, 벽화나 큰 그림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 모두 새로운 창작물이 된다. 나뭇가지를 모아 숲의 요새를 만들고 그 안에서 함께 듣는 권정생의 『엄마 까투리』 이야기, 토닥토닥 나를 위로해 줄 걱정인형 만들기, 도서관 벽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 속 주인공 그려 넣고 사진 찍어보기, 책의 배경이 된 장소에 가 보는 문학기행, 역사이야기를 아트북으로 만드는 작업 모두 신 나고 재미난 새로운 창작물이 제작되는 과정이다. 이처럼 독서문화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참여자들의 창작 활동에 불을 붙이는 작업이어야 한다.

■ 작가와 함께하는 독서문화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작은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작가와의 만남’은 이용자뿐만 아니라 작가에게도 상당히 자극이 된다. 작가가 창작에 대한 여러 과정을 안내함으로써 독자인 이용자들은 더욱 친근하고 자세하게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작가 역시 소수의 진정한 독자를 만나는 기회이기도 하다. 진솔한 질문과 답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도 생각지 못한 독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들어볼 수 있다. 작가들이 독자와 만나는 기회가 좀더 많아져야 한다.


<권오준 작가와의 만남>

『곰 사냥을 떠나자』의 글작가 마이클 로젠은 수시로 학교를 방문하여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활동을 진행한다. 아이들을 매료시키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장면은 EBS 「세계의 교육현장」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볼 수 있으며 마이클 로젠이 직접 운영하는 누리집에서도 만날 수 있다.(www.michaelrosen.co.uk) 이용자들에게 작가를 만날 수 있는 폭을 넓혀주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보자. 이를 위해 출판사 문을 두드려 보자.

■ 좋은 독서동아리로 남기자.
독서문화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지속성을 갖게 하는 것, 자발성을 높이는 것, 그리고 다시 사회로 환원하는 활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기 위주로 기획하기보다는 좋은 인연을 만들고 그들이 함께 책에서 받은 자극을 사회적 활동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작은도서관에서 좀더 고민을 가지고 좋은 독서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해보면 좋겠다. 좋은 기획일수록 많이 홍보하고 전파해보자.

박소희_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 이사장 / 2015-04-01 09:21

※ 작은도서관신문 4월호에 연재된 기사입니다. [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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