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책의 폐허들

매체명 : 매일경제 보도일 : 2018.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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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8&no=582367
[책과 미래] 책의 폐허들

강연이 있어서 한 창조혁신센터를 찾았다. 한 층 전체가 툭 트인 공동작업 공간 겸 휴게 공간. 일요일인데도 일하는 이들이 아주 많았다. 주 52시간 노동 시대에 적절한 휴식은 당연하지만 달리고 쉬는 리듬은 각자의 것. 시간에 열정을 쏟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방향이 옳다면 반복이야말로 목적지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작업하고 이야기하고 회의하고 공부하는 이들이 아름다웠다. 한쪽 서가에 놓인 책은 서른 권쯤. 사람들이 쉬면서 틈틈이 읽을 책들이다. 하지만 눈이 의심스러웠다. 거의 몇 년 지난 구간들뿐. 구색이 한심할 지경이다. `이러고도 창조혁신?` 한두 번이 아니다. 지자체장 등의 집무실에 갈 때마다 책상에 놓인 책이나 서가에 꽂힌 책을 유심히 보는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철 지난 보고서나 증정받은 낡은 책이 대부분이다. 읽고 싶은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책에 구김이 없는 걸 보면 방 주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공 공간의 서가를 볼 때마다 궁금한 게 있다. 책들은 누가, 언제, 어떻게 고르는 걸까. 도대체 선별은 정말 하는 걸까. 대부분 책을 장식으로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독서를 작정하지 않는 한, 자신이 필요한 책을 읽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보통은 눈앞에 있는 책 중에서 손이 닿는 책을 꺼내 읽는 `짬짬이 독서`를 즐긴다. 그러다 영혼을 흔들고 정신을 고양하며 꽉 막힌 생각을 해결해줄 아이디어가 담겨 있는 운명의 한 구절과 마주치는 것이다.

따라서 잠깐의 독서를 즐기는 곳일수록 오히려 서가의 책은 꾸준히 교환되고 영감과 통찰을 줄 수 있도록 잘 골라야 한다. 그러나 비슷한 곳들을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처음 꾸밀 때뿐 책이 폐허가 되었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적은 예산이나마 배정되는지도 의심스럽다.

며칠 전 대통령이 구산동도서관마을을 방문하면서 생활형 SOC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도서관 같은 마을의 삶과 직접 연관이 있는 공공시설에 투자해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환영할 일이지만 우려도 크다. 논의 내용을 보면 작은도서관 등 주로 하드웨어 구축에만 관심을 둘 뿐, 꾸준히 보충해야 할 책이나 공간에 맞춰 책을 선별할 사서 등 전문인력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는 듯하다.

작은도서관의 경우 현재도 실제로 운영되지 않는 곳이 수두룩하다. 자칫하면 책의 폐허를 또다시 늘릴까 걱정이다. 새로 일을 벌이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미 서가가 마련된 공공영역마다 지역 도서관 사서를 채용해 배치하고 서점 등과 협업해 정기적으로 책을 교체하는 등 독서에 대한 흥미를 돋우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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