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살아 있는 도서관

매체명 : 한라일보 보도일 : 201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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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halla.com/read.php3?aid=1541516400612511099
[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살아 있는 도서관

오래전 북유럽 덴마크에서 아주 특별한 도서관이 개관된 적 있다. 바로 '살아 있는 도서관(the Living Library)'이다. 이 도서관에서는 책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출해 준다. 이 도서관이 만들어진 이유는 책은 바로 사람이 만든 것이고, 사람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다는 때문이다. 하기야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 혹은 부모님의 무릎을 베고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과 인생을 배우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온 삶은 모두 한 권의 책이다. 사람들은 모두 수많은 기쁨과 슬픔을 맛보면서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왔다. 그래서 노인 한 분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거대한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거와 같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실로 도서관에 들어가 보면 장엄한 삶과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도서관에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오래도록' 책으로 지어진 삶의 이야기를 읽을 때, 책속에 담긴 지혜와 그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정신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전달되어 온다.

좋은 책은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바꾸어 준다. 새로운 생각은 나의 일상을 이전과는 아주 다른 길로 이끈다. 책을 읽고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여태까지와는 다른 길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이다. 책 읽는 사람은 아날로그적 여유로운 삶과 아름다움에 대해 깊은 사유를 한다.

책은 언제나 삶의 문제를 깊이 고찰하며 세상을 이야기해준다. 줄기차게 읽은 책을 통해 삶의 허기를 채우며 세상을 보는 창을 넓혀나간다. 그들은 길을 잃은 우리에게 천천히 나지막하게 어제까지 보이지 않던 모든 것을 보여준다.

하숙비를 제때 내지 못해 하숙집 주인의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새로 나온 책을 한 권 두 권 사 모으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도 모자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책을 찾아다녔다. 대학 도서관은 물론이고 이름 있다는 도서관은 죄다 뒤졌다. 도서관에서 묵직하게 다가오던 인생과 세상과 우주에 대한 언어로 쓰인 진리와 아름다움은 삶과 문학을 위한 깊은 토양이 되어 갔다.

더운밥을 구하듯 매일 책을 찾아 읽으면, 정신과 영혼이 조금씩 진화해서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게 되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책 읽기는 세상의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지적인 흥분과 열락을 준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전자기술시대는 이를 거부한다. 스마트폰에 밀려 책 읽은 사람이 줄어들고 도서관이 점차 존재 의미를 상실해 가는 듯이 보인다. 그렇지만 도서관에는 오늘도 책 읽은 사람들로 활기에 넘친다.

도서관을 떠올리면 정적이고 엄숙한 분위기가 떠오르지만, 그곳에는 역동적이고 생동하는 분위기가 살아 있다. 한 권의 책을 찾다 보면, 그 곁에서 또 다른 책이 얼굴을 내밀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그들을 통하여 새로운 인생과 세상과 사람을 더 가까이서 만날 수 있게 된다.

도서관이 인생과 세상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임을 확인하게 되면, 책을 사랑하는 이들은 다시 책 읽기에 대해 고민하고 '내 인생의 책'을 만나는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이야기한 대로 도서관은 현인(賢人)의 모든 유물이, 그리고 현혹과 기만이 없는 모든 것이 보존되어 안식하는 신전이기 때문이다.

책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지만, 책을 버리고 파괴하는 것도 사람이다. 책에는 우리의 인생과 세상이 담겨 있다. 깊어가는 가을에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우리네 인생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 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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