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작은도서관 북큐레이션


작은도서관에서 북큐레이션

도서관에서 ‘북큐레이션’이란 장서 정책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먼저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공공도서관 1천여 개, 작은도서관 6천여 개. 지방자치단체마다 도서관 정책의 편중 현상이 심하고 여전히 인구 대비 공공도서관 수가 선진국에 크게 못 미치는 형편이긴 하지만 이제 책을 읽고 싶은데 도서관이 없어서, 혹은 경제적 이유로 책을 보지 못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독서 인구를 창출하고 독자를 유인해내기 위한 도서관의 장서 정책은 무엇을 기준으로 수립해야 하는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 아래 작은도서관의 수서와 배가, 큐레이션을 논의해보면 좋겠다. 모든 기획이 그렇듯이 북큐레이션을 이야기할 때 기본이 되는 것은 공간의 정체성, 사회 트렌드 그리고 이용자의 취향을 반영한 커뮤니티의 특성일 것이다.

지금 북큐레이션이 떠오른 배경
작은도서관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전국 작은도서관은 대개 20~40평 규모에, 5천~1만 권가량의 책을 갖추고, 대부분 동네 주민이자 단골 이용자일 것으로 추측되는 하루 10~30명 내외의 독자들과 만난다. 덧붙여 도서관은 회원제 서비스와 대출 제도를 갖춰 이용자 분석이 용이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 서비스 개발과 북큐레이션이 가능하다.


작은도서관이 증가하면서 그 역할도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가에 관계없이 줄어만 가는 독서 인구를 확대하고, 도서관 본연의 기능인 인문 정신에 기반을 둔 책 읽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기본 목표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우리 도서관은 그동안 양적으로는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내용적으로는 도서관의 진정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즉, “도서관은 필요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사람들이 좋은 책을 읽으려들지 않는 현실을 해결하고 독서를 통해 사회와 사회 구성원의 진보에 기여해야 한다”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 메튜 베틀스)는 명제에 근접하지 못했다. 자료의 수집과 보관이라는 전통적인 기능에만 골몰했을 뿐, 그렇게 수집된 자료를 통해 이용자들이 새로운 지식과 탐구의 길로 접어들게 해줄 창의적인 길을 열어주지는 못했다. 도서관에 있어서 북큐레이션이란 바로 이런 도서관의 핵심 과제를 다른 용어로 정리한 것에 불과하며, 지금 새삼스럽게 도서관에서 북큐레이션이 과제로 떠오른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공간과 심리 고려한 마인드맵
작은도서관의 북큐레이션을 이야기할 때 우선 두 가지를 생각해보고 싶다. 하나는 자료의 수집이며 또 하나는 자료의 배치다. 책 전문가가 계절에 따라, 이슈에 따라 긴밀하게 대응하면서 새로운 책들을 발 빠르게 소개하고 이용자의 호기심을 일깨우는 선택과 배치로 독서 흥미를 북돋울 수 있는 그런 장서 정책과 서가 운용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북큐레이션의 첫 번째 핵심은 ‘사람’이다. 주제 전문성을 확보한 사서, 혹은 사서 자격증이 없더라도 책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눈 밝은 인력이 상주하는 도서관이어야 비로소 큐레이션이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북큐레이션의 두 번째 핵심은 ‘서가’다. 책을 잘 모르는 이용자들이 혹은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도 미처 깨닫지 못한 이용자들이 도서관 서가를 보면서 숨어있던 호기심과 욕구에 불을 당길 수 있는 그런 서가. 자료들이 관리하기 편리하게 기능적으로 분류된 것이 아니라 사회 트렌드와 개인의 취향을 적절히 고려해 유연하게 배치된 서가. 책이 온통 등만 보이며 숨 쉴 틈도 없이 빽빽하게 꽂혀진 것이 아니라 표지를 통해 시선을 확보하는 열린 서가 구성은 필수다. 북큐레이션을 이야기할 때 사서는 단순히 책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되며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숨 쉬고 읽고 거닐고 머무르는 동선을 따라가는 이용 형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사람의 시선이 머무는 동안 마치 마인드맵처럼 뇌의 작용이 확산되고 펼쳐지는 공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도서관을 비롯한 수많은 책 공간을 탐방하고 아카이빙이 결합된 기획 전시를 많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북큐레이션은 단순히 책의 선택과 배치만은 아니며 보다 입체적으로 공간과 심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곳에서 독자를 유혹하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 특히 공간이 작고 이용자가 많지 않은 작은도서관은 ‘전통적인 도서관의 역할’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작은도서관이 지역 대표 도서관의 역할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작은도서관이 모든 사람이 원하는 책을 다 갖춰놓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최근의 작은도서관은 무엇보다 책만 보는 공간도 아니지 않은가.

최근 작은 책방들이 독특한 북큐레이션을 통해 취향의 공동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듯이, 작은도서관들도 그들만의 정체성과 커뮤니티 특성에 기반을 둔 공간 구성과 북큐레이션을 잘 갖출 때 지역 독서 문화의 토대로서 존재감을 잃지 않게 될 것이라 기대해본다.

▶ 원문기사 : 행복한 아침독서 2017-11-01

http://www.morningreading.org/article/2017/11/01/201711010913001611.html/

댓글 0건
작은도서관 회원 및 SNS계정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0자 / 14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