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세계의독서교육]대학 입시가 독서교육을 이끈다

입시가 독서교육을 이끈다

독일 속담에 “어린이 한스가 배우지 않은 것은 어른 한스도 영영 배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인생에서 어린 시절의 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독일독서재단에서는 어려서부터 ‘레제슈타트(Lesestart 읽기 시작)’라는 독서운동을 벌이고 있다. 영국의 북스타트 운동을 모델로 한 것으로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 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책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도서관, 어린이 병원, 지자체, 유치원과 학교 등 다양한 기관에서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연방교육부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는 레제슈타트 운동은 1~3세, 3~6세, 6세 이상의 아동을 대상으로 세 단계로 진행되며, 각 단계에 따라 그 시기에 맞는 수준의 책과 자료를 각 기관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프랑스의 특징적인 독서운동으로는 ‘읽기와 읽히기’ 운동이 있다. 프랑스 교육부와 인기 작가들로 구성된 후원회의 지원을 받는 이 운동은 정년퇴직자들로 구성된 시민 단체가 추진한다. 프랑스 전역의 초등학교 5~8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읽기와 읽히기’ 운동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된다. 학교 측은 교실 수업 수준과 내용에 맞는 책을 자원봉사자들에게 제공하고, 학생들을 2~5명씩 소규모 그룹으로 나눠 대화식 독서지도가 되도록 준비해준다. 시간이 부족한 교사들을 대신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대학입학 시험, 아비투어와 바칼로레아
독일의 학교교육은 철저하게 독서와 글쓰기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초·중·고 학교 수업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한 후 글쓰기로 마무리한다. 이것은 바로 고교 졸업 자격시험이자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아비투어를 대비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입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아비투어는 일종의 논술 시험이다. 입시 과목은 4과목으로 과목당 4~5시간에 걸쳐 장문의 글을 써내는 방식이다. 하루에 끝내는 것이 아니라 며칠에 걸쳐 치러진다. 이 시험을 대비하려면 평소 학교 수업도 독서와 토론, 글쓰기 형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글을 읽고 토론을 통해 생각을 정리한 후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내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과거 나치의 만행에 대한 반성의 뜻이 담겨있기도 하다. 나치의 만행에 동조한 것이 자신의 생각이 부족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반성이다. 독서와 토론,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확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건전한 민주시민을 양성함으로써 다시는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프랑스의 고교 졸업 자격시험이자 대학입학 자격시험은 널리 알려진 바칼로레아다. 바칼로레아는 1808년 나플레옹 때부터 실시되어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다. 응시 분야별로 일반, 기술, 직업으로 나뉘며, 이 중에서 대학진학을 위해 지원하는 분야가 바칼로레아 일반이다. 일반 바칼로레아 중에서 공통과목인 철학 시험은 4시간에 걸쳐 주어진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해야 한다. 바칼로레아 철학 논술 시험은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주제가 광범위하고 난해해서 여기에 출제된 주제는 사회적 화제와 관심사가 된다.


바칼로레아에 대비하기 위해 프랑스 학교에서는 통합교과적인 독서교육을 실시한다. 이러한 통합교과적인 독서교육이 가능한 것은 유연한 교재 선정과 교사의 수업 구성에 대한 자율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특별히 교과서가 정해져 있지 않고, 교재 선정도 학교 단위가 아닌 교사의 재량에 따라 이루어진다. 수업 내용 역시 교육부에서 필수적으로 포함시켜야 할 최소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시하면 교사들은 여기에 맞추어 자율적으로 수업을 구성할 수 있다. 교육부는 학생들이 1년 동안 읽을 100여 권 이상의 학년별 권장 도서 목록을 해마다 배포한다. 문학작품, 각종 전문 서적, 만화, 기록물 등 소재와 주제 면에서 다양한 책들이 선정된다. 학생들은 교과와 관련된 주제에 맞추어 다양한 텍스트를 읽고 발표와 토론을 거친 후 정리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수업을 진행한다. 이러한 평소 학교 수업을 통해 프랑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독서, 토론, 논술 능력을 기른다.

독서, 토론, 논술 능력이 핵심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능력을 말한다. 유럽 명문대의 경우에는 1주일에 50권의 도서 목록을 제시하고, 이 중에서 10권을 읽고 리포트를 제출하게 한다. 미국도 보통 한 강좌를 듣기 위해서는 주 교재 3권에다 참고 도서 30권을 읽어야 한다. 강의 시간에 발표도 해야 하고 동료의 질문에 답하고 서로 토론도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려면 우선적으로 전문 서적을 읽어낼 수 있는 독서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강좌를 제대로 수강할 수 없다. 다음으로 갖추어야 할 것은 발표와 토론 능력이다. 발표와 토론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수업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다. 마지막은 쓰기 또는 논술 능력이다. 대학에서의 학문 연구는 결국 쓰기로 마무리된다. 리포트와 각종 시험, 졸업 논문 등은 글로 써야 한다.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고, 학문 연구자는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해야 하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논문을 작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독서 능력, 발표 및 토론 능력, 쓰기 및 논술 능력은 대학수학능력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대학 입시 준비, 독서로부터 시작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인 독일의 아비투어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4~5시간 동안 주어진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는 논술 시험이다. 이 시험을 치르려면 무엇보다 먼저 4~5시간 동안 쓸 수 있는 깊이 있는 정리된 생각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평소에 엄청난 독서량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기에 4~5시간 동안 서술할 수 있는 글쓰기 능력까지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대학 입학을 위해 평소에 다양한 독서와 토론으로 깊이 있는 생각을 기르고, 이를 글로 쓰는 연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대학 입시가 학교의 독서교육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현재와 같은 객관식 선다형 수능 시험으로는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가려낼 수도, 학교의 독서교육을 이끌어낼 수도 없다. 근본적으로 대학 입시가 바뀌지 않는 한 제대로 된 학교의 독서교육도, 학교교육의 정상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안한상_『독서가 국가 경쟁력이다』 저자

http://www.morningreading.org/article/2019/10/01/2019100109390014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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