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느티나무도서관웹진] 도서관다운 도서관 프로그램

느티나무도서관 웹진 5호에 실린 글입니다. 도서관 프로그램만의 차별성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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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05 도서관 현장과 정책

2015.04+05

도서관다운 도서관 프로그램

박영숙 | 느티나무 도서관 관장

도서관은 참으로 막강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역사와 문화의 기록, 온 세상의 정보를 담은 자료들이 있고, 그 자료들과 함께 다양한 사람을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엮어 개인과 사회가 맞닥뜨린 문제들을 해결하고 더 나은 삶을 모색하도록 지원하는 사서가 있다. 도서관이 뿌리내리고 있는 지역사회도 큰 자산이다. 그곳에 깃들여 살면서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정보행위는 각자의 삶과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그리고 공공성과 지적자유라는 눈부신 가치!

그런데 정작 그 보물들은 한쪽으로 밀쳐둔 채 자꾸만 다른 것으로 도서관의 역할을 확인 하려는 것 같아 안타깝다. 도서관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사서가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말하면서 정보서비스 역량이나 장서에 대한 장악력 대신 프로그램 횟수와 참가자수를 먼저 따지는게 현실이다.


고민 01: 왜 도서관에서 프로그램을?

좋은 도서관의 조건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서관에서까지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느냐는 비판도 있다. 도무지 균형을 잡기 어려워 보이는 양 극단 사이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할 지 그 몫을 맡은 사람은 불편하고 무거울 수밖에 없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기에 앞서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양쪽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라는 표현이 과연 같은 것을 지칭하고 있는 것인지? 그 정의가 타당한 것인지?

‘도서관 프로그램’이 어떤 것이고 무엇에 기여할 수 있을지 제대로 경험하고 확인할 기회가 없었다면, 이제라도 프로그램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2011년부터 2년 동안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도서관과 함께 책읽기’라는 프로그램의 주관단체로 느티나무도서관재단이 선정되어 백여 개 도서관의 사서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도서관에서 프로그램을 해야 하는 이유로 가장 많은 사서들이 꼽은 것은 ‘모객’과 ‘성과’ 두 가지였다. ‘꼭 도서관이 해야 할까’ 회의가 들 때도 있지만, 일단 도서관에 오도록 만들 기회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용자가 많아져야 도서관이 제대로 평가받고 예산도 확보할 수 있다, 프로그램이 없으면 ‘도서관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과연 ‘프로그램으로 도서관 이용이 얼마나 활성화되었는지?’ ‘도서관이 무언가 하고 있다는 성취감과 자긍심을 갖게 되었는지?’ 안타깝게도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모집하면 이용자 수 통계수치가 늘어나지만 한시적이고, 더구나 도서관의 정보서비스 이용으로 연계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굳이 도서관에서까지 프로그램을 해야 하느냐고 비판하는 쪽에서는 다른 기관이나 단체와 중복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도서관의 프로그램에서 평생학습센터, 문화센터의 프로그램과 내용이나 형식, 심지어 강사진의 명단에서도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한편, 중복되는 게 무슨 상관이냐, 선택의 기회가 넓어지는 것 아니냐, 게다가 도서관은 사교육기관과 비교해 ‘값이 싸거나 무료’라서 좋다는 의견도 있다. 사교육 시장과 경쟁한다면, 좋은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단기적으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기에는 도서관은 거의 모든 면에서 유리한 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영리로 운영되는 북카페 외에도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시민단체,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학습공동체, 마을작업장, 마을학교, 마을공유지 등 다양한 주체가 세우는 공간들이 생겨나면서 차별성을 가르기 어려운 프로그램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비영리로! 도서관이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존립의 문제까지 고민된다.

고민 02: 사서의 소외

여러 사서들의 고충을 들으면서 한 가지 공통점으로 발견한 것은 ‘프로그램이 도서관 고유의 서비스와 별개로 업무’로 여겨진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프로그램을 외부 강사가 진행하도록 기획된 것으로 보아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바로 여기서 하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유의 목적 외에 부수적인 효과를 기대하며 시행하는 것이라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시적으로는 성과가 보일 수 있겠지만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 도서관 본연의 서비스를 맡은 사서들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기획하고 수행하면서 성취감을 얻고 도서관과 사서의 역량을 높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 현장의 상황은 짐작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프로그램을 담당한 사서들의 역할은 기획안 작성, 강사 선정, 홍보와 참가자 모집, 보고서 작성 같은 사무로 제한되고 프로그램의 과정에서는 대부분 배제되는 상황이었다. ‘별개의 자격증을 따지 않는 한’ 사서가 직접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자괴감과 소외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부터, 인기강사를 섭외하기 위한 경쟁의 뒷이야기까지. 애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도 자긍심을 느끼기보다는 마치, 나그네에게 집을 내준 것 같은 소외감의 배경도 짐작해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프로그램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 결정은 사서의 권한 밖의 일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제안 01: 프로그램, 정보서비스의 과정으로!

답을 찾아가기 위해 다시 두 가지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프로그램에 정보자원이 충분히 활용되고 사서직의 전문성이 발휘되고 있는가.

느티나무도서관에서도 업무를 기획할 때마다 끊임없이 그 질문을 놓고 토론을 벌여왔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과정은 참가자들에 의해 표현되는 다양한 정보를 파악하고 수집할 수 있는 기회였다. 실제로 참가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동은 자료선정에 참고할 유용한 자원이 되고, 그대로 정보자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낭독회나 독서회 모임이 있은 뒤에는 그날 읽은 책과 함께 관련 자료들을 모아서 눈에 잘 띄는 공간에 전시하는데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이 사서에게 큰 의미를 가졌다. 특정 주제로 장서를 다시 살펴보면서 어떤 자료가 더 필요한지 부족한 자료를 찾아내기도 하고, 시리즈로 기획된 자료인 줄 알지 못했다가,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제야 누락된 자료를 파악하는 경우도 있다.

프로그램은 카운터테이블에서보다 좀 더 밀도 있게, 게다가 정기적으로 이용자와 소통을 이어갈 수 있는 통로이다. 프로그램 앞뒤에 짤막하게 새책 소개, 행사나 자원활동 안내, 지역 소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유용한 정보서비스로 활용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따로 이용자교육을 하지 않아도 도서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기대와 신뢰가 쌓일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제안 02: 도서관의 자원을 활용하고 획득하는 과정으로!

도서관이 지닌 자원과 힘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다양한 기관에서 열리는 프로그램들 속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지 고민하기보다는 지역사회에서 그런 시도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북돋우는 몫을 하길 기대한다. 그 모든 활동의 과정과 결과물을 도서관의 정보서비스 자원으로 연계할 방법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도서관 프로그램의 차별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털어놓자면 느티나무도서관에서는 ‘이 도서관엔 프로그램은 없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대출서비스도 하고 자료선정, 컬렉션 전시, 낭독, 독서회 모임도 하고 해마다 작가초청 행사도 한다고 하면 ‘그런 거 말고 프로그램’은 없느냐는 질문이 되돌아온다. 요일별, 시간대별로 참가대상과 교육내용을 명시한 강의를 기대한 질문이다.

느티나무도서관은 프로그램을 정보자원을 수집하고 생산하는 과정, 더 폭넓게 공유하는 통로로 여겨왔다. 이 도서관에는 ‘책이 많아서’ 온다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진다. 장서 규모가 5만 권밖에 되지 않는데 책이 많다니? 아마 나에게 필요한 자료, 읽고 싶은 책을 만나는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도서관다운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구체적인 과정은 도서관이 이미 갖고 있는 막강하고도 풍부한 자원을 프로그램에 잘 활용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방향을 설정한다면 프로그램은 도서관의 자원을 새롭게 확보하고 축적해나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읽기의 힘

도서관은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물음표를 떠올리도록 지원할 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느티나무도서관은 ‘자발성’의 원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음표를 떠올리도록 지원한다는 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정보요구를 불러일으키고 사회흐름을 읽는 통찰력과 비판적 사고가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언론에 다양한 도서관 행사 소식이 실릴 때면 도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반갑다. 그러면서 또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고요하게 텍스트에 빠져들 시간이 있는가.’

프로그램이 정보요구를 불러일으키는 동인으로 작동하고, 정보를 활용하는 기회이자 정보 활용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 되려면 스스로 텍스트에 몰입하고 맥락을 읽어내는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 행사나 모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만으로 보장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해부터 느티나무도서관에서는 ‘정면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낭독의 힘에 배팅! <책, 마주치다>라는 이름으로 날마다 낭독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아홉 명의 직원이 모두 한 꼭지씩 주제를 정해 책을 낭독하는 프로그램인데 정해진 멤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을 미리 읽고 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개관 초부터 독서회 활동에 공을 들여 십여 개의 모임이 이어져왔는데 멤버십을 갖고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좀 더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완전히 열린 모임을 갖기로 한 것이다.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부담도 없애려고 매번 빈 이름표를 마련해둔다. 주민등록상 이름 대신 그날그날 자신의 감정을 담아보기로 했더니 ‘위로가 필요해’ ‘쿵’ ‘구멍’(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고) ‘욕망’ 등 다채로운 이름이 등장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이 5~6백 쪽이나 되는 두꺼운 분량의 책을 읽는데도 꼭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프로그램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아직 채 1년도 안 되었기 때문에 성과를 말하기엔 이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직원들 스스로 텍스트의 힘,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신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참가자가 몇 명이라도 혹은 바람을 맞더라도 담담하게 프로그램을 이어갈 수 있는 든든한 힘을 얻었다.

상호작용의 힘

자발성이라는 원칙은 자연스레 상호작용으로 연결 된다. 느티나무도서관에서는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모든 프로그램의 과정에서 가르치고 평가하는 방식 대신, 의도하지 않고 그때그때의 환경과 맥락에 따라 일어나는 상호작용에 무게를 두고 있다.

도서관 내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다양한 기관, 단체, 개인들과 만나고 협력하는데에서도 도서관 프로그램은 좋은 기재로 보인다. 도서관이 지닌 자료, 공간, 사람이 힘을 발휘했다. 도서관이 지역정보센터로 마땅히 담당해야 할 기능이다.

일회성 행사로도 지역의 다양한 커뮤니티와 연결고리를 만들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광우병, 물 등 환경과 관련된 문제, 에너지문제 등을 주제로 한 환경단체 강좌에 도서관공간을 대관할 때면 해당 주제의 컬렉션을 만들어 전시한다. 단체의 담당 활동가와 소통하여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관련 자료들을 살피고 새로운 자료를 추천받거나 기증받기도 한다.

규모가 작은 지역 단체나 기관에서는 행사를 개최할 장소를 독립적으로 갖고 있기도 어렵고 참가자를 모으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언제나 이용자들을 만날 수 있는 도서관은 좋은 홍보처이자 소통의 장이 될 수 있었다.

단지 공간만 대관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행사를 함께 기획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예를 들면, 환경에 관련된 주제로 단체에서 강의를 맡고, 환경영화제에 참여한 감독을 초청해 영화를 상영하고, 강의에 활용된 자료와 영화 DVD를 구해 도서관 자료로 등록하여 서비스하고, 등록한 자료는 특별 컬렉션으로 만들어 관련 단체들의 활동이 담긴 자료들과 함께 전시하는 식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도서관이 이렇게 많은 기능을 하는지 몰랐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지역 단체의 활동가들이 도서관의 고객이 되는 것은 굉장히 큰 힘이 되었다. 다양한 계기로 네트워크가 엮어지면, 각 단위의 사람들이 관련 주제의 장서개발에 참고원이 되고 장서를 모니터링 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우연한 혹은 아주 사소한 계기로 다양한 커뮤니티와 연결되는 경험을 하면서 상호작용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갖게 되었다. 도서관이 서비스를 더 풍부하게 제공하려고만 애쓸 것이 아니라, 이용자와 커뮤니티 사이의 역동을 북돋우고 상호작용에 공을 들일 이유를 확인한 것이다.

기대와 응원

‘사립’도서관이라서 가능한 일이지 ‘공립’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프로그램을 자료가 공유되는 과정으로 기획하고 지역커뮤니티의 다양한 주체들과 연계하는 일,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콘텐츠를 다시 수서, 배가, 전시, 참고서비스에 반영하는 일을 하려면 바뀌어야 할 조건이 너무 많다. 하지만 법과 조례를 비롯한 규정과 정책목표를 따라야 하는 조건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한 걸음씩이라도 내딛는 것 자체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바뀌어야 하고 어떤 자원이 필요한지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책적 요구에 명분과 설득력을 가지려면 도서관 스스로 분명한 필요를 인식하고 이용자, 나아가 비이용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느 때보다 '시민들의 생각하는 힘'이 절실한 시대이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잘 활용하며 대안을 찾아가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다. 정보격차로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상에서 도서관이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정보행위로 이어지지 않는 모객에 매달려 도서관 고유의 역할이 묻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아도 턱없이 부족한 사서들이 일회성 행사에 힘을 소진하느라 사명감이나 긴장감은 커녕 정체성마저 잃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만일 그것을 이용자들이 바라고 정책이 요구한다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도서관이 지닌 막강한 힘과 자원을 흘려버리는 아깝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서울도서관의 <2015년 생애주기별 독서문화 활성화 사업 워크숍> 발표자료를 바탕으로 고쳐 쓴 글입니다.

[출처] 도서관다운 도서관 프로그램|작성자 VOL (Voice Of Library 느티나무도서관 웹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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