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북큐레이션, 주제가 있는 책읽기] 서가에, 도서관에, 청소년에게 숨을 불어넣는 북큐레이션

북큐레이션, 주제가 있는 책읽기

북큐레이션, 서가 사이에 숨어있는 보석 찾기


구산동도서관마을 청소년자료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잡지. 서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청소년자료실 장승처럼 서있는 이 서가에는 잡지가 아닌 청소년자료실 책들이 전시되어있다. 오른쪽에는 주제별 도서를, 왼쪽에는 신간 도서를 전시한다. 청소년자료실 사서는 이곳을 청소년들의 목소리로 채우기 위해 수시로 책과 청소년을 살피고 말을 건다.


가던 길 멈추게 하기


귀여운 인형이 있거나 평소 관심 있던 MBTI에 대한 설명이 있거나 맛있어 보이는 사탕이 있다면 아이들은 발길을 멈추게 된다. 물론 재밌어 보이는 책 표지도 크게 한몫을 한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의 가장 큰 장점은 인근에 학교가 많아 청소년들이 많이 산다는 점이다. 방과 후, 학원 가기 전, 주말에 심심할 때 도서관을 찾아오는 것이 어렵지 않다. 자원봉사와 학교 창체 시간, 동아리 시간에 우연히 왔다가 계속 찾아오는 아이들도 제법 많다.

이런 아이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책이 돋보일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본다. 손재주가 있거나 아이디어가 좋은 아이들이 많아 북큐레이션 서가는 점점 풍부해진다. 함께 작업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칭찬을 주고받으며 아이디어를 덧붙이다 보면, 사서의 퇴근 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까지도 집에 갈 생각을 안 하게 된다. 이렇게 전시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작품들이 탄생했다.

공공도서관을 많이 이용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슈가 되는 책은 이미 예약이 걸려있어서 도서관에서 빌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구산동도서관마을 같은 경우에는 기본 대출 가능일 2주에 연장까지 하면 3주까지 빌려 볼 수 있다. 그다음 예약자가 있는 경우에는 6주 정도를 기다려야 책을 만나볼 수 있다. 심지어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예약이 한 명만 가능해 인기 도서를 빌린다는 것은 정말 운이 좋아야 가능하다. 『아몬드』나 『죽이고 싶은 아이』 같은 책들은 서가에 꽂혀있는 적이 없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대출률이 높거나 대중적으로 유명한 책을 전시하게 되면 그 공간은 전시 기간 내내 비어있게 된다.

그래서 구산동도서관마을 청소년자료실에서는 ‘직읽마상’이라는 이름으로 신간을 전시하고 있다. ‘직읽마상‘은 사서와 직읽마상 선정위원 청소년들이 신간 중 8권의 책을 직접 읽고 마음대로 주는 상으로, 도서관에서 선정하는 청소년 신간 도서 우수상이다. ‘직읽마상’을 시상하고 전시한 지 3년 정도 되니 가끔 SNS에 작가의 수상 소감이 올라와 청소년들과 함께 뿌듯함을 나누기도 한다.

‘모아 읽는 책’ 서가에는 일상을 살피면서 주제를 얻고 그에 따른 좋은 책들을 전시하고 있다. 모아 읽은 책 서가의 책은 하루에 3~10권 정도 대출될 만큼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서가는 대출이 된 만큼 새로운 책으로 채우고 있다. 서가에 있을 때는 대출되지 않던 책도 표지가 보이게만 전시해도 대출이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 봉사 활발하게 하기


사서에게 책을 추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그것을 직접 경험한 사람도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 도서관에서는 쉽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대출과 반납을 하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지난번 추천받은 책이 좋았다며 ‘이런 책’을 또 추천해달라고 오는 아이들도 많다. 가장 중요한 건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도서관이 조용한 공간이긴 하지만 서로 책을 추천하고 추천받는 소리가 들리면 자신도 용기를 내어 책 이야기를 나누어볼 수 있다. 최근에는 학교 과제를 위해 책을 추천받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상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요즘 재미있게 읽은 책이나 관심 있는 주제로 넘어가게 된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사서는 신간 구입 책 주제를 정하고, 모아 읽는 책의 주제를 정할 수 있다.


도서관 행사와 일상 연결하기


도서관은 어쩌다 오는 곳이 아니라 일상에서 함께할 때 그 의미가 커진다. 우리가 만나는 이용자들이 평생 도서관을 이용했으면 좋겠고 좋은 독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북큐레이션 역시 좀더 그들의 일상에 다가갔으면 좋겠다. 특히 자원봉사 청소년과 청소년운영위원회, 독서동아리 청소년들이 많은데 이 친구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고, 도서관 벽을 꾸미고,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즐길 축제를 마련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책도 중심이 된다. 다양한 청소년 기관이 있지만 도서관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서관에는 청소년자료실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전시에 맞추어 청소년자료실도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소소한 일상을 적을 수 있는 ‘날적이’도 마련해두었다. 그 내용을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추천하기도 하고 책을 선정하는 방법을 적어두기도 한다.


아이들의 배움이 전시되도록 하기


이 모든 과정 중 의미 있는 내용들은 온·오프라인으로 다시 정리하고 전시해 아이들의 배움이 전시되고 기록될 수 있도록 하였다(구산동도서관마을 네이버 블로그 참고). 인근 학교도서관 도서반 친구들이 매년 추천하는 책을 전시하였고, 디자인고등학교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그와 연계되는 환경책을 전시하기도 했다. 청소년의 목소리로 세금이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작은공론장‘을 마련하여 의견을 듣고 그 내용을 전시하기도 하고, 매달 청소년들 사이에서 관심 있는 주제로 웹진을 발행하고 전시한다.

아쉬웠던 사례들


이 모든 큐레이션들이 호응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아쉬웠던 부분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 대출이 안 된 책 소개 : 인기 있고 흥미로운 책들 사이에 대출이 안 된 책을 소개하면 좋았는데 대출이 안 된 책들만 소개하니 오히려 관심도가 떨어져서 이제까지 가장 대출이 안 되는 ‘모아 읽은 책’이었다.

둘, 책보다 더 큰 책 소개 띠지 만들어 전시 : 아이들의 의욕이 너무 넘쳐 책 띠지가 책 표지의 3분의 2 정도가 되었다. 책을 보려면 띠지를 치워야 할 정도였는데 그러니 이용자들이 만지려고 하지 않았다.

셋, 남학생을 배려하지 않은 책 모음 : 여학생들이 많다 보니 주로 여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가 주를 이루었다. 남학생들과 농구하는 법, 축구 선수, 역사, 과학 등의 책을 선정하여 전시했더니 남학생들의 대출이 많아졌다.

넷, 실물 책이 없이 책 표지만 있는 전시 : 남는 벽에 공간이 있어서 책 표지만으로 전시했더니 이는 대출로 연결되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 다양한 실험 중이다. 움직일 때마다 책을 채워 넣어야 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기도 하고, 하루 종일 한 권만 빌려 가는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함께할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이 시기에도 온라인으로 계속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아이들과 얼굴 맞대고 책 이야기를 하고 책을 전시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일인지 알았다.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 중에 좋은 책인데 절판되어 아쉬운 책을 만나기도 하고, 전혀 몰랐던 출판사에서 좋은 책을 발견하기도 한다.

사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혼자 하면 재미도 없다. 북큐레이션은 아이들과 도서관 안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고 전시하고 아카이빙하는 즐거운 작업이고 사서가 노동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한아침독서, 은평구립구산동도서관마을 청소년자료실 사서 고정원, 윤지민

http://www.morningreading.org/article/2022/11/01/2022110109003214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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