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독서교육]

책읽기의 행복한 경험, 영국 북스타트 운동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세계적인 작가를 많이 배출한 영국은 일찍부터 국가가 앞장서서 독서운동을 시작했다. ‘북스타트 운동’은 가장 널리 알려진 영국의 대표적인 독서운동이다. 영유아들에게 책을 나누어주는 이 운동은 갓난아이 때부터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시작되었다. 출생 후 7개월이 되어 보건소에서 건강진단을 받을 때 두 권의 유아용 도서와 책 관련 정보가 들어있는 안내 책자 그리고 지역 도서관 초청장이 있는 책 꾸러미를 무료로 준다. 이렇게 생후 7개월부터 48개월까지 세 번에 걸쳐 세 개의 책 꾸러미를 제공한다.

북스타트 운동은 대상인 영유아는 물론, 부모가 자녀의 독서 지도에 관심을 갖도록 함으로써 가정에서의 독서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독서 관련 단체들과 협력해 추진하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 이러한 영국의 북스타트 운동은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었으며 한국에서도 지역 도서관을 중심으로 실시되고 있다.

생활의 일부가 된 공공도서관
영국에는 도서관 시설이 아주 잘 갖춰져 있다. 어린아이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공공도서관이 있고 시골에는 이동도서관이 찾아간다. 그래서 도서관은 영국에서 가장 쉽게 책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고, 책뿐만 아니라 잡지, 음악 시디 등 다양한 자료들을 빌릴 수 있다. 특히 유아용 서가는 기차나 동물 모양으로 설치해 아이들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돕는다. 아이들은 기차 지붕이나 동물의 등에 올라타서 놀이처럼 재미있게 책을 읽는다. 아이들에게 도서관은 장난감보다 더 신기하고 재미있는 책으로 가득 찬 신나는 놀이터다. 그리고 아이들을 책의 세계로 안내하기 위해 북 클럽, 숙제 클럽, 독서 챌린지, 각종 부모 교육 프로그램, 작가와의 만남 등 다양한 행사를 실시한다.

특히 독서 챌린지는 영국 전역의 도서관에서 매년 6주간의 여름방학에 진행된다. 네 살부터 열두 살까지 참여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책을 읽은 만큼 스티커를 붙여주는데 두 권을 읽으면 동메달, 네 권을 읽으면 은메달, 여섯 권을 읽으면 금메달 스티커를 붙여준다. 매년 주제를 달리하며 아이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주제 관련 캐릭터, 로고, 포스터도 제작한다. 독서 챌린지는 단순히 독서 실적보다 아이들에게 책읽기의 즐거운 경험을 주는 데 중점을 두는 프로그램이다.

교과서가 없는 학교 수업
북스타트로 시작된 유아기의 독서운동은 초등학교의 독서교육으로 이어진다. 국가교육 지침에 읽기 교육을 강조해 아이들이 책을 즐겨 읽도록 한다. 이를 뒷받침하려고 학교도서관은 물론 학급별로도 도서관을 갖추고 있다.

영국에는 교과서가 없다. 그래서 영국의 학교에서는 여러 다양한 책이 수업 시간의 교재가 된다. 초등학교 수업은 과목별이 아닌 주제별로 이루어지며, 교사는 주제와 관련된 책을 선정해 아이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면서 수업을 진행한다. 독서와 토론, 글쓰기 등이 수업의 핵심 활동이다. 평가도 문제 풀이식의 객관식 사지선다형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쓰는 서술형 시험으로 이루어진다. 국가 차원의 일제 고사도 없기 때문에 수업은 교사가 자율적으로 진행한다. 이러한 학교 수업 방식 때문에 아이들은 평소에 책을 읽지 않을 수 없다.

학교와 도서관, 독서 단체의 유기적 네트워크
영국에서는 학교와 도서관뿐만 아니라 여러 단체들도 독서운동을 펼친다. 서적상연합이 주관하는 ‘북토큰 운동’은 세계 책의 날인 4월 23일을 기념해 어린이에게 책을 구입할 수 있는 1파운드의 북토큰을 나누어주는 행사다. 행사 두 달 전에 학교를 통해 모든 어린이에게 배포해 할인 가격으로 책을 구입하게 한다.

영국의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만남의 공간이자 아이들의 놀이터다. 책은 고르기 쉽게 읽기 능력별, 저자별로 배치하고 카페 같은 공간도 있어 간단한 간식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다. 또한 다양한 독서 정보를 제공하고 저자 사인회, 동화 구연, 책 읽고 그리기 같은 행사도 진행한다.

이처럼 영국에서는 학교와 도서관, 독서 단체들의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일 년 내내 다양한 책 잔치가 펼쳐진다. 며칠간 지속되는 축제 기간에 유명 인기 작가들이 아이들과 만나 대화하면서 책읽기의 즐거움을 생생한 이야기로 전해준다. 아이들의 책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높이기 위해 진행되는 작가와의 만남은 학교와 도서관, 사회 도처에서 이루어진다. 아이들이 작가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관심과 인기가 높다.

이와 같이 다양한 독서운동을 통해 영국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책과 가까워지고 책과 친숙해진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아이들이 책과 관련된 행복한 경험을 얻는 데 중점을 둔다. 부모와 교사가 이끌어가는 수동적인 책읽기가 아닌 책과의 특별하고 행복한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능동적인 책읽기를 할 수 있게 유도한다. 독서는 개별적인 활동이 아닌 모두가 ‘함께하는 활동’이라는 인식 속에서 아이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만나고 오감으로 책을 즐기면서 책읽기를 즐겁고 행복한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생활 속에서 책읽기가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 될 때 아이들 스스로 능동적인 독서를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아이들의 평생 독서 습관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의산업의 중심은 책
영국은 산업혁명을 일으켜 산업화를 주도한 나라지만 탈산업화 이후의 지식·정보사회에서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다. 교육, 관광, 출판, 방송, 영화, 스포츠, 광고 등의 서비스산업에 전체 고용 인구의 80퍼센트가 종사한다. 지식·정보사회에서 천연자원도 없는 영국의 경제를 떠받치는 건 이른바 ‘창의산업(Creative Industry)’이다. 이 창의산업의 중심에 바로 책이 있다. 단적인 예로 1997년 이후 십 년 동안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로 벌어들인 수출액이 231조 원인데, 이 기간 동안 「해리포터」 시리즈와 그 파생 상품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308조 원임을 보면 창의사업이 얼마나 부가가치가 높은지 알 수 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책이 있다. 그래서 영국은 독서를 교육의 핵심에 둔다.

/안한상_『독서가 국가 경쟁력이다』 저자

http://www.morningreading.org/article/2019/04/01/201904010937001498.html